[편집국에서] 자신과 타인을 사라지게 만드는 시대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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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철 문화부장

‘간밤에 선풍기를 발로 찼다/꿈속에서 엎어져 있는 악인을 찬다고 찬 것이/침대 발치에 놓인 선풍기 머리를 찬 것이다….’

김언 시인의 시집 〈백지에게〉(민음사) 중 ‘악인’의 도입부다. 느닷없는 ‘몸 개그’는 웃음을 유발한다. 이렇게 웃어도 될까, 이런 생각도 따라온다. 시 속 세상에 펼쳐진 상황은 심각하기 때문이다. 짧은 웃음 뒤에 찾아온 생각은 여러 의문으로 이어진다. 얼마나 나쁜 사람이기에 ‘악인’이라고 했을까. 왜 걷어차려고 했을까.


잠자다 선풍기 발로 찬 시 속의 ‘나’

동료 ‘악인’과 함께 ‘투명 인간’ 전락

개인 자발적 격리 현상 심화되면서

‘유대 관계의 사막화’ 공동체 위협

‘역할’ 없이 일만 하면 조직 붕괴돼

따뜻한 관계의 힘·소중함 깨달아야


‘여기 적자니 모르는 악인이다. 나는 감정만 남아서/여기 이러고 있다. 감정만 남아서….’ 악인이 모르는 사람이라니. 모른다는 의미는 ‘잘 알지 못한다’ 또는 ‘실제로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일까. ‘나’와 악인은 틀림없이 아는 사람일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라고 딱 잡아뗀 이유는 무엇일까.

같은 시집의 ‘겪어보지도 않고 나쁜 사람’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나를 싫어한다/이유는 모르겠으나 그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초면부터 이때까지 내가 먼저 건넨 인사를 세 번이면 세 번 다/외면하거나 못 본 척하지는 않았을 테니/…그 인간을 향해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어느 자리에서든 먼저 인사를 하지 않는다/마치 투명 인간처럼 그 인간이 앞에 있어도/그 인간 너머를 본다…’

인과관계를 가진 듯한 시 두 편의 맥락을 감안하면 악인과 ‘나’는 보기 싫어도 거의 날마다 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듯하다. 정황상 동료이고, 같은 조직에 근무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투명 인간은 듣고서 또 무시할 것이다. 다른 방법을 안다면/나 역시 투명 인간이 되지는 않았을 테니까. 투명하게/투명하게 나는 한 사람의 기억을 지워 간다/그것도 인연이겠지만.’

결국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투명 인간이 되었다. ‘모르는 악인’이라고 한 이유도 짐작할 수 있다. 모멸감을 안긴 악인에 대한 기억을 지웠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 것일 테다. 하지만 꿈까지 꾸는 것으로 봐서 지우기는커녕 더 강하게 의식하는 듯하다. 이 둘은 어쩌다가 이런 관계가 되었을까.

김언의 시는 우리 시대의 기업, 공직사회, 정당, 군대, 가정 등 크고 작은 다양한 조직들이 직면한 문제점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조직 문화, 공동체 문화 상실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우려한다. 한국 사회는 다양성과 개인주의의 본질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포스트모더니즘 후기로 내던져졌다. 타인의 마음이나 정서를 알아차리고, 공동체 내에서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는 것을 번거롭거나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는 풍조는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조직에서 소통이 사라지고, 개인의 자발적인 격리 현상은 심화되는 느낌이다.

‘유대 관계의 사막화’는 조직을 집어삼킨다. 신자유주의, IT 기술과 SNS의 확산, 세계화로 촉발된 초욕망의 시대는 이런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여기다가 미국과 유럽 등에서 비판 없이 들여온 서구식 HR(인적자원) 방법론들은 조직을 ‘맡은 일만 하면 되는 곳’으로 전락시킨다. 팬데믹으로 재택근무 등이 일반화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조직에서 아무리 일을 잘하더라도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반쪽짜리일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와 조직에 필요한 것은 역할이다. 돈을 잘 번다고 100점짜리 부모나 배우자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부모 역할, 배우자 역할, 자녀 역할을 제대로 할 때 가정이 화목해지고 구성원들도 성숙한 삶을 살 수 있다. 노력과 인내로 꽃피운 제대로 된 역할들의 결합은 진실한 소통과 관계맺기를 이끌어낸다. 역할을 기피하면서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조직엔 미래가 없다. 기업 등 상당수 조직들이 ‘시한부’라는 판정을 받은 것도 이런 이유다.

서로가 서로에게 투명 인간이 되는 조직이나 사회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모멸감, 분노, 우울, 미움, 시기, 질투 등의 악감정은 쉽게 전이되고, 투명 인간화를 가속화한다. 투명 인간들은 우울 등 감정적 파탄에 처할 수밖에 없다. 김언 시에 등장하는 ‘나’도 분노로 인한 우울병증이 우려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역할에 무지한 ‘악인’의 삶도 이미 심각한 상황인 듯하다. 이들이 몸담은 조직은 가쁜 숨을 내쉴 것이다.

투명 인간이 될 위기에 처한 자신과 타인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 동료들에게 진심 어린 격려, 응원의 말을 건네자. 특히 자신이 해야 할 ‘진짜 역할’을 깨닫기 위해선 지혜롭고 따뜻한 관계의 소중함, 삶과 공동체의 본질부터 이해해야 한다. 투명 인간을 양산하는 지금 우리 사회엔 서로가 서로를 더 따뜻하게 보듬으려는 작지만 소중한 노력이 절실하다.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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