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룸·주방·연습실… 필요한 공간 ‘빌려’ 쓴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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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트렌드 ‘공간 대여’
공간을 소유하기보다는 ‘콘텐츠’로 소비하는 문화

MZ세대를 중심으로 공간을 빌려 쓰는 ‘공간 대여’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부산 금정구에 위치한 공유 주방 ‘서동부엌’. 스페이스클라우드 제공 MZ세대를 중심으로 공간을 빌려 쓰는 ‘공간 대여’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부산 금정구에 위치한 공유 주방 ‘서동부엌’. 스페이스클라우드 제공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는 것은 생활의 일부가 됐을 만큼 일상화됐다. 자동차, 자전거, 킥보드 등 주로 이동 수단에 머물던 공유의 영역이 최근 ‘공간’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파티룸, 댄스 연습실 등 취미와 여가를 보내는 공간부터 공유주방, 촬영 스튜디오, 오피스 등 비즈니스 공간에 이르기까지, 공간의 용도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파티룸 #생일파티 #취미공간 #촬영스튜디오

20대 직장인 A 씨는 친구 생일날 파티 장소를 찾는 역할을 맡았다. 식당이나 카페처럼 공공장소가 아니라 친구들끼리 편안하고 오붓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있다. 사회초년생들이라 마음껏 먹고 놀고 떠들 수 있는 ‘자기 집’을 소유한 친구는 없다. 그래서 즐겨 찾는 경로는 ‘공간 대여 플랫폼’. ‘부산 파티룸’을 검색하면 개성 넘치는 공간들이 주르륵 뜬다. 시간당 몇천 원부터 몇십만 원까지 가격대도 다양하다. A 씨는 그중 배달 음식을 시켜서 먹을 수 있고 셀카봉과 와인잔을 갖춘 곳을 선택했다.

B 씨는 제과제빵 자격증 시험을 준비 중이다. 학원에서 실습을 하고 있지만 모자란 부분은 보충하고 싶다. 하지만 집에 제빵용 오븐을 들이기엔 공간과 비용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포털사이트에서 공유 주방을 검색했다. 베이킹 도구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와 이용자들의 후기를 꼼꼼히 살펴본 후 시간당 1만 6000원에 주방을 빌렸다.

이처럼 MZ세대를 중심으로 ‘공간 대여’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SNS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 ‘파티룸’을 검색하면 54만 6000개의 게시글이 뜬다. 생일파티, 베이비샤워, 브라이덜샤워 등 파티뿐 아니라 다양한 모임과 취미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촬영 목적의 스튜디오도 소비가 많다. 개인 프로필이나 가족, 커플, 친구끼리 촬영은 물론, 판매와 방송을 목적으로 한 촬영도 대여 공간에서 많이 이뤄지고 있다.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늘면서 공유 오피스나 화상회의 시설, 소규모 워크숍 장소 수요도 늘었다.


공간 대여 플랫폼 ‘스페이스클라우드’(왼쪽)와 ‘여기어때’ 공간 대여 앱 화면 캡처. 공간 대여 플랫폼 ‘스페이스클라우드’(왼쪽)와 ‘여기어때’ 공간 대여 앱 화면 캡처.

점점 커지고 있는 공간 대여 시장

‘스페이스클라우드’는 2016년 운영을 시작한 공간 대여 플랫폼이다. 최근 누적 회원 100만 명, 누적 거래액 800억 원을 돌파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코로나가 덮친 최근 3년간 급성장한 점이다. 2016년 10만 명이던 회원 수는 2019년 70만 명, 2020년 85만 명, 2021년 105만 명으로 크게 늘었다. 거래액도 2016년 10억 원에서 2019년 250억 원, 2020년 450억 원, 2021년 710억 원으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스페이스클라우드는 급성장의 원인을 ‘도시를 새롭게 사용하는 MZ세대의 등장’으로 분석했다.

MZ세대는 모바일을 기반으로 거래하는 것이 익숙하고, 온라인 평판(리뷰)과 이용 경험 콘텐츠로 도시공간을 소비하고 공유하는 것을 선호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프로젝트, 스몰 밋업, 팀플, 파티원, 유튜브 촬영, 랜선 콘서트 등 다양한 목적으로 도시 공간의 적극적인 소비 주체가 됐다.

공간 대여를 찾는 MZ세대 소비자 특성은 공간을 프라이빗하게 쓰고 싶어하며 독립적으로 공간의 재량권을 갖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공간의 다양성과 재미에 주목하며 단순히 여가뿐 아니라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고 샵을 운영하는 등 콘텐츠를 만들어 부가가치를 생산해낸다. 또한 공간의 리뷰를 읽고 공간의 평판을 형성한다.

지난 1월 여행 플랫폼 ‘여기어때’의 설문조사(여기어때 앱 사용자 2814명 대상)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61.6%가 공간 대여의 장점으로 ‘최적화된 공간’을 꼽았다. 이어서 ‘간편한 예약·이용’(54.1%), ‘소음 걱정 없이 자유롭게 이용’(40.6%) 순이었다.

공간대여 이용 경험은 ‘20대 여성(40.2%)’이 가장 많았다. 20대 남성과 30대 여성이 각각 18.9%, 30대 남성이 11.7%로 뒤를 이었다. 공간 대여 서비스를 통해 이용하고 싶은 공간으로는 ‘파티룸(66.1%)이 가장 높았고, ‘운동 공간(33.9%)’, ‘카페(31.4%)’ 순이었다.


지역의 가치를 높이는 공간 기획

“부산은 MZ세대가 좋아할 만한 공간 자원이 풍부하다.” 스페이스클라우드의 평가다. 부산은 16~39세 인구 규모가 100만 명에 달하고, 1089팀의 호스트(입점업체)가 1285곳의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파티룸과 연습실이 인기를 끌고 있고, 촬영 스튜디오와 회의실도 성장하고 있다. 스페이스클라우드에 입점한 곳이 전국적으로 약 5만 곳임을 감안할 때 이제 막 성장세를 탄 분위기다. 이러한 점에 주목해 스페이스클라우드는 지난달 26일 ‘부산 로컬브랜더 컨퍼런스’를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공간 운영자들의 사례와 철학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부산 영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도시재생 스타트업 ‘알티비피(RTBP) 얼라이언스’의 김철우 대표가 메인스피치로 나서 지역 공간기획의 경험을 공유했다. 김 대표는 “영도의 조선·항만업이 쇠퇴하면서 비게 된 공간을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재건하는 시도를 시작했다”며 “기존의 공간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콘텐츠를 운영하고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지역사회는 소비자이기도 하지만 생산자이기도 하다. 소비자와 생산자 커뮤니티 중간에서 플랫폼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부산 공유 주방 ‘서동부엌’의 송병근 대표는 “서동이 부산 어디에 있는지 아시나요”라는 질문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발전되지 않는 곳’ ‘좁은 골목길’ ‘낙후지역’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서동에 사람들의 발길이 닿도록 하는 게 목표였다고 한다. 송 대표는 1층 공유주방에 이어 최근 2층에 OTT방과 촬영장소를 꾸몄다. “서동부엌과 서동시장 식자재를 활용한 로컬브랜드 ‘진짜한우육회’ 등 지역 내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실험 중이다”고 전했다. ‘연습실’ 1개의 본점에서 40개에 달하는 지점까지 공간 대여 사업을 확장시킨 정석전 제이엔터 대표의 사례 발표도 있었다.

스페이스클라우드 운영사 앤스페이스의 정수현 대표는 “소비자들이 부동산의 언어를 용도 중심으로 바꾸고 있다. 코워킹, 코리빙, 워케이션, 테스트식당, 팝업룸 등이 시장에서 유통되기 시작했다”며 “사용자가 원하는 공간을 만들고 부가가치를 만드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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