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금아의 그림책방] 느림과 게으름
문화부 부장
비룡소 제공
현대인은 바쁘다. 가정, 학교, 직장 등 소속된 집단과 관계는 우리에게 다양한 형태의 일과 챙김을 요구한다. 여기에 근면과 성실을 바람직한 삶의 자세로 보는 사회 분위기도 가세한다. 그 때문일까? 많은 이들이 늘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느림과 게으름. 현대 사회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단어로 ‘여유 찾기’를 제시하는 그림책이 있다.
대만 류쉬꿍의 〈거북이 나라의 금방〉(현암주니어)은 토끼가 친구 거북이의 나라를 여행하는 이야기다. 거북이 나라는 다 느리다. 기차역에서 다음 기차는 한 달 뒤에 오고, 식당에서는 세 시간이 지나도 음식이 안 나온다. 푹 자고 일어나도 아직 끝나지 않은 영화에 느긋한 온천 체험까지. 어느덧 토끼도 거북이 나라의 시간에 빠져든다. 거북이 나라를 떠나는 날, 공항에 가니 비행기가 고장 났다. 토끼는 생각한다. ‘느긋이 기다리면 여섯 달은 금방이야.’
느림은 ‘빠른 삶’이 못 보던 것을 보게 만든다. 게으름도 비슷하다. 〈게으를 때 보이는 세상〉(비룡소)은 폴란드 작가 우르슐라 팔루신스카의 그림책이다. 주인공 소년의 주변 어른들은 좀 이상하다. 신문을 보고, 식사 준비를 하고, 아이를 돌본다고 말하지만 다들 누워있다. 수영을 배운다, 지붕을 고친다, 불침번을 선다고 말만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그림). 아주 잠깐일 수도, 꽤 긴 시간일 수도 있지만 그들은 게으름을 통해 평소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한다. 신문지를 통과하는 햇살, 가는 거미줄, 멀리 날아가는 비행기, 풀숲의 작은 생물, 그리고 밤하늘의 별. ‘게으름을 피우는 시간’은 놓치고 살았던, 일상에 숨겨진 보석 같은 존재를 마주하게 한다.
느림과 게으름이라는 단어를 여름휴가에 연결 지어 본다. 휴식 없이 내달려온 일상에 대한 보상으로, 현대인은 노는 것마저 계획을 짜서 열심히 논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귀한 휴가를 망치는 것 같은 생각까지 든다. 그래도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가도 괜찮다. 쫓기며 살았던 몸과 마음이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비움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에 앞서 일상에서 조금씩 숨을 돌리고 살 수 있게 현대인을 둘러싼 시스템이 먼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