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다시,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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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대체, 이 전쟁은 무엇입니까?” “의(義)와 불의(不義)의 싸움이다.” “나라와 나라의 싸움이 아니구요?” “그렇다. 의와 불의의 싸움이다.”

영화 ‘한산:용의 눈물’에서 항왜 군사가 된 왜군 준사와 이순신 장군의 대화 내용이다. 영화 시작 30분쯤 후에 나온 ‘의와 불의의 싸움’이라는 말은 영화 중반부와 후반부에도 나와 총 세 번에 걸쳐 반복된다. 이것만으로도 영화 ‘한산’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명확해진다.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는 ‘올바름을 지향하는 것’이라는 이순신 장군이 가진 철학이다.

절체절명 순간 극복하는 리더십
올바름 지향하는 의(義)에 있어
‘인간다움’은 꼭 지켜야 할 가치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라는 걸 염두에 두면 ‘의’는 목숨보다 중한 가치였다. 가치는 경험하거나 실천할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

왜군 준사가 자신의 주군은 자신들을 방패막이로 삼기 바빴지만 “당신은 당신 사람을 구하기 위해 앞으로 나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이순신 장군에게 자신을 받아달라고 한다. 적군과 아군이 아닌, 이순신 장군이 지닌 인간의 품격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당시 임금이던 선조는 전쟁을 피해 도망가기에 바빴다.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개성, 평양, 의주로 피란 가는 모습에선 ‘의’를 찾아볼 수 없다. 종묘사직을 최우선으로 여기던 조선으로서는 치욕적인 일이다.

선조가 백성을 버린 것처럼 이순신 장군이 자신의 병사를 전쟁의 도구로만 사용했다면 ‘의’를 지키기는커녕 왜군에게 패했을 것이다. 한산도 대첩의 승리는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조선의 곡창지대를 지킬 수 있게 했다. 더불어 왜군을 물리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어져 의병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계기가 된다. ‘의’는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은 조선의 왕과 사대부가 아니라 조선의 백성이 지킨 것이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로 133척에 달하는 왜군 함선을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즉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왜군을 격파한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그린 영화 ‘명량’(2014)은 ‘이순신 열풍’을 몰고 왔다.

이후 선거철마다, 혹은 위기 때마다 정치인들은 이순신 장군을 불러온다. 여야를 떠나 이순신 장군은 모든 정치인의 로망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을 잘 극복한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 간신들의 모함에 백의종군했던 이순신 장군을 저마다 자신의 상황에 맞춰 말한다.

영화 ‘명량’과 ‘한산:용의 눈물’을 만든 김한민 감독은 곧 ‘노량:죽음의 바다’로 이순신 장군 3부작을 완성한다고 한다. ‘명량’에서는 용장(龍將)으로, ‘한산’에서는 지장(智將)으로, 마지막 ‘노량’에서는 현장(賢將)으로 이순신 장군을 그린다. 그는 “이순신 장군은 나라를 구한 성웅 이미지로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 기능할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순신 장군이 가진 정신에 있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임진왜란이 조선과 일본이 싸운 7년 전쟁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시 일반 백성들에게는 나라와 나라의 싸움이 아니라 ‘의’와 ‘불의’의 싸움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의’를 실천한 핵심 인물이 이순신 장군이다. ‘의’는 대한민국 사람에게 DNA로 각인되어 격변의 근현대사를 거치며 민주화를 이룬 중심 코드다.

‘의’는 옳음, 마땅함이다. 옳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공자는 때에 맞는 중용, 즉 ‘시중(時中)’을 말한다. 잘못 이해하면 기회주의로 비칠 수 있지만 시중과 기회주의는 다르다. 그 구분을 ‘의(義)’와 ‘이(利)’로 한다. 결국 주체와 상황에 달려 있다. 그 의미를 살펴보면 어떠한 상황에도 잃지 않는 ‘인간다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의’는 특히 맹자가 중요시했다. 맹자는 사람이라면 중요한 네 가지 마음이 있다고 했다. 상대방을 측은하게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예의를 가지고 양보할 줄 아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옳고 그른 것을 가릴 줄 아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 그것이다. 인간이 가진 다양한 생명의 스펙트럼 중 이 네 가지가 ‘인간다움’을 가늠하는 잣대이자 ‘의’를 규정하는 기준점이 된다는 생각이다.

8월 14일은 한산도 대첩 430주기다. 성웅으로 기억되는 이순신 장군의 업적만이 아니라 인간다움, 자기다움을 잃지 않았던 이순신 장군의 고뇌와 정신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와 어떻게 만나야 할지 생각했으면 한다. 다시, 이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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