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재개발 민원처리비 인정… 포스코, 대연8구역 시공사 유지
“조합에 제안한 민원처리비 합법”
1심 효력 정지 가처분 결정 취소
본안소송 결과 때까지 시공권 인정
도시정비법 개정안 시행 앞두고 혼란
최근 법원의 결정으로 포스코건설이 남구 대연8재개발구역의 시공사로 법적 지위를 얻게 됐다. 대연8구역 전경. 부산일보DB
포스코건설이 부산 남구 대연8주택재개발정비사업의 시공권을 유지하게 됐다. 법원이 시공사 선정 총회의 효력을 정지한 가처분 결정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포스코건설이 조합에 제안한 민원처리비가 공사와 관련 있다고 해석한 것이 결정적이다. 건설사가 시공자 선정 때 재산산상의 이익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도시정비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법안의 실효성 논란과 정비업계의 혼란이 예상된다.
부산고등법원 민사5부(부장판사 김민기)는 지난 8일 대연8구역 시공사 선정총회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1심 결정을 취소했다. 이로써 2020년 10월 대연8구역 총회에서 시공사로 선정된 포스코건설은 본안소송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시공권을 법적으로 인정받게 됐다.
대연8구역의 시공사 선정을 둘러싼 법적 다툼의 쟁점은 포스코건설이 제안한 민원처리비의 합법성 여부다. 당시 일부 조합원은 포스코건설이 개별 조합원에게 3000만 원의 민원처리비 지원을 약속해 관련 규정을 어겼다며 총회의 효력 정지를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했다.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국토부 고시 제30조)에 따르면 건설사는 시공과 관련 없는 비용을 조합원에게 제공할 수 없다. 2021년 2월 부산지방법원 1심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포스코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한 총회의 효력을 본안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정지시켰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포스코건설의 사업제안서에서 민원처리비를 주택 유지 보수, 세입자 민원 처리, 상가 영업 민원처리, 토지 분쟁 민원처리 등에 사용하도록 특정해 시공과 관련 있다고 해석했다. 또 포스코건설이 민원처리비를 조합원 개인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조합 측에 무이자 대여하면 조합이 개별 조합원의 신청에 따라 3000만 원을 대여하는 형식이여서, 조합원에게 금전적 이익을 제공해 불법적으로 시공권을 획득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시공사 선정 당시 경합을 벌였던 롯데-현산 컨소시엄도 1500억 원 상당의 민원처리비를 제안했기에, 민원처리비가 시공사 선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단독 시공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공사비 때문에 포스코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됐다고도 해석했다.
재판부의 이 같은 판단은 도시정비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건설사와 정비업계에 큰 파장을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12월 시행 예정인 도시정비법 개정안은 정비사업 투명화에 초점을 맞춰 건설사(또는 등록사업자)가 조합과 시공 계약을 체결할 때 시공과 관련 없는 사항에 대한 금전이나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신설됐다. 기존 국토부 고시로는 건설사가 조합원에 민원처리비나 이주비 등의 불법 논란이 있는 금전적 혜택을 제공해도 행정처분이나 형사처벌을 통해 막지 못한다는 지적이 높았기 때문이다.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재개발·재건축 조합원들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혜택이 사라진다는 우려가 높았다. 건설업계에서는 수주를 위한 출혈 경쟁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은 환영하지만, 브랜드 선호도가 높은 업체일수록 시공권 수주전에서 유리하다는 불만도 나왔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서 사실상 민원처리비의 합법성을 인정하면서 도시정비법 개정안의 실효성이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이사비나 이주비의 불법 논란을 피하기 위해 민원처리비를 통해 우회적으로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며 “금전적 혜택을 개정안에서는 금지하고, 판례에서는 인정하는 모양새여서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한편 대연8구역 재개발 사업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대연8구역은 교통영향평가와 건축심의를 통과했으며, 교육영향평가를 준비 중이다. 정성수 조합장은 “그동안 소송과는 별도로 사업을 위한 각종 심의를 차근차근 밟아 왔다“며 “이르면 연내 사업시행인가 총회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연8구역 재개발은 남구 대연동 1173번지 일원 19만 1897㎡에 지하 3층~지상 35층 규모의 아파트 30동, 3516가구를 짓는 사업이다. 포스코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될 당시 3.3㎡당 436만 5000원의 공사비 등 파격적인 조건으로 화제를 모았다.
송지연 기자 sj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