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해체된 웹툰작가는 조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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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수 영산대 웹툰학과 교수·부산경남만화가연대 대표

바야흐로 웹툰 전성시대다. 작가, PD, 강사 등 종사자들이 넘쳐나고 교육프로그램도 우후죽순 생겨난다. 산업이 부흥할수록 그 산업 종사자인 ‘사람’에게 어떤 현실이 놓여있는지, 미래의 후배들인 지망생들에게도 알려줘야 한다. 전쟁터에서도 교육은 멈추지 않았거늘 이젠 교육계가 전쟁터와 같다. 대학은 학원 흉내를 내고, 학원은 대학 흉내를 낸다. 기업이 정부보다 힘이 세고, 기관이 직업훈련소 역할도 한다. 이제 작가들도 스튜디오를 창업하고, 회사는 작가들을 창조한다. 서로서로 역할을 넘나든다. 이래서 상생을 위해 다들 지산학, 지산학 하는 모양이다.

거품론도 있겠지만,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사람에게 신중하자는 것도 무리한 오지랖이다. 모두가 장밋빛 미래를 홍보한다. 취미가 곧 노동이며 부와 명예를 거머쥘 차세대 인기 직종의 청사진을 큼지막하게 그린다. 살인적인 마감일정과 경쟁 강요,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작가들 얘기는 작은 글씨로 쓴다. 많은 지망생들이 우르르 웹툰의 길로 들어서는데, 결국 선택도 책임도 자신의 몫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누가 누구를 키운다’는 식의 작가양성은 종종 겸연쩍다.

그렇다면 작가란 무엇일까? 글(내용)과 그림(형식)을 결합한 ‘만화’라는 언어를 통한 창작을 업으로 삼는 사람. 즉, 웹툰작가는 글·그림 작업을 모두 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정의는 업계 현실을 외면한, 고리타분한 고정관념이 되었다.

작가가 되기 위한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꼭 대학을 나올 필요는 없다. 아무리 직업훈련소 흉내를 내더라도 대학은 ‘현장’에 있지 않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고. ‘학문의 전당’이라는 본연의 가치를 지키되 한계도 인정해야 한다. ‘학위’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면 지식전달과 기술훈련을 넘는 ‘좋은 추억’도 선사해야 한다. 앞으로의 예술교육은 ‘판단과 평가’보다는, ‘동기부여와 코칭’의 중요성이 크다. 수평적인 관계에서 공평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멘토·멘티가 함께 성장해나가는 것. 그렇게 타인과 갈등하고 이해하며 ‘관점의 지평을 넓히는’ 윈윈을 해야 한다.

웹툰 생태계가 커지며 다양한 직종의 수요도 증가했다. 대표적인 예는 웹툰PD인데, 작가군에 한정하면 웹소설 등 원작IP를 웹툰화하는 경우의 ‘각색콘티작가’ 등이다. 스튜디오에 취업해 수익 분배 대신 고정 급여를 받으며 근무하기도 한다. 메인 작화가, 스토리작가, 각색작가, 콘티작가, 컬러작가, 배경작가 등으로. 추구하는 형식과 장르도 천차만별인데, 형식별로는 카툰, 4컷, 극화, 장르별로는 코믹, 액션, 로맨스 작가와 같은 식으로도 구분한다. 어시스턴트나 분야별 전문작가가 본업인 경우도 많다. 직무 분야가 아니라 플랫폼 이름을 붙여 OOO연재작가로 구분하는 경우는 흥미롭다. 노파심이지만 적어도 작가를 인지도, 순위, 매출, 성과로 구분하는 호칭만큼은 지양해야겠다. 작가들을 향한 허망한 갈라치기이기 때문이다.

분업화로 데뷔의 문턱은 더 낮아졌지만, 그만큼 퇴출의 문턱도 낮아졌다. 1인 창조기업으로도 불렸던 작가라는 직업이 차츰 효율화라는 명분으로, 상업성이라는 기치로 헤쳐 모인다. 자본을 가진 스튜디오, 집단 창작 시스템, 공장식으로 양산한 작품과 1인 작가들의 작품은 노동 환경이 천지차이다. 이렇게 되면 가장 고통 받는 것은 글/그림을 홀로 도맡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들이다. 비주류 장르, 다양성, 작가주의 성향을 가진 1인 작가들은 설 곳이 없다. 반강제적으로 내밀리는 것이다. 이처럼 산업의 고도화는 작가들을 파편화한다. 작가라는 직종이 손쉽게 분해되기 쉽다는 것이다. 해체가 쉽다는 건 조립도 쉽다는 뜻이다.

웹툰 전성시대의 부품이 되지 않으려면 작가들의 자생적 노력은 물론 많은 관심과 지원도 필요하다. 더불어 다양한 비주류 장르와 예술적 가치를 지키는 상생의 토양을 위한 지원이, 더 큰 성과를 일구기 위한 공격적 투자 못지않게 병행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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