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롯데 가을야구 앞두고 떠난 ‘사직 할아버지’
“롯데 우승 전에는 한국 안 떠난다”
진정한 팬 캐리 마허 씨 명복 빌어
'영원한 롯데 자이언츠 팬' 캐리 마허 전 영산대 교수가 16일 별세했다. 부산일보DB
부산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야구팬이 세상을 떠났다. 16일 별세한 롯데 자이언츠 ‘찐팬’ 캐리 마허(68) 전 영산대 교수의 명복을 빈다. 마허 전 교수는 2013년부터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사직야구장은 물론이고 전국을 돌며 롯데를 응원해 ‘사직 할아버지’로 불렸다. 사직야구장에서 두 차례나 시구했고, 롯데 팬들의 결혼식에 주례도 섰다. 그의 부친은 한국전 참전용사였다니 한국과의 인연이 깊다고 하겠다. 다발성 골수종 진단을 받고 투병 중에 코로나19 합병증으로 결국 눈을 감았다고 한다. 입원 이틀 전인 지난 4일에도 사직야구장을 찾아 롯데를 응원했을 정도로 야구 사랑이 대단했다. 자신의 유산과 부의금을 부산 야구 발전을 위해 써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아낌없이 부산에 주고 떠난 것이다.
빈소는 부산 동래구 아시아드 장례식장에 마련되었다. 장례식은 5일장으로 치러지고 발인은 20일이다. 그의 국내 생활을 도우며 추억을 쌓은 롯데 팬 8명이 공동 상주로 이름을 올려 마지막을 함께하고 있다고 한다. “장례식이 즐겁고 떠들썩했으면 좋겠다”는 고인의 뜻에 따라 빈소에는 그가 입던 롯데 유니폼들이 내걸렸고, 장송곡도 롯데 응원가가 흘러나오고 있다고 한다. 빈소 입구에는 ‘최강 롯데’라고 적힌 깃발이 조문객들을 맞이한다.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는 ‘야생야사(野生野死)’의 도시 부산 야구팬다운 모습이다. 빈소에는 조문을 쓸 수 있는 포스트잇이 마련됐다니, 무엇보다 함께해서 고마웠다고 적고 싶다.
롯데 자이언츠는 17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마허 전 교수에 대한 추모 행사를 열었다. 경기 시작 전 묵념 행사와 함께 그의 별세를 애도하는 이미지를 전광판에 게재했다. 롯데 팬들은 별도로 마허 전 교수가 롯데 홈경기를 지켜보던 사직구장 1루 지정석인 121블럭 4열 8번 좌석에 헌화 공간을 마련했다. 그는 과거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롯데 자이언츠가 우승하기 전까지는 한국을 떠날 생각이 없다”고 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롯데 팬이 된 걸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롯데가 지더라도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하는 바보였다.
롯데 선수들은 17일 경기에서 역전승이라는 선물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올해 프로야구 시즌이 끝나면 은퇴하는 이대호는 최근 이승엽의 ‘프로 통산 안타 개수’를 넘어서면서 불멸의 기록에 다가가고 있다. 마허 전 교수의 소식을 접한 이대호는 자신의 SNS에 “교수님의 롯데를 위한 마음을 항상 간직하겠습니다”라는 글을 올리고 명복을 빌었다. 6위의 롯데는 가을야구에서 멀어지는 듯했지만, 최근 무서운 기세로 따라붙고 있다. 마허 전 교수가 보여 준 부산 사랑을 부산시민들은 잊지 않을 것이다. 롯데도 부산 팬들의 여망에 부응해서 가을야구로 직행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