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위한 연대’ 상호부조가 자본주의 문제 해결 첫 단추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21세기 상호부조론 / 딘 스페이드

양극화·기후변화 등 위기의 인류
성공적 상호부조 활동 위한 지침서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변화에서 비롯된 산불, 홍수, 폭염뿐 아니라 인종 차별과 젠더 폭력, 부의 불평등 같은 첨예한 위기들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다. 소수자와 취약 계층은 상대적으로 더 큰 불안에 시달린다. 그러나 정부 정책의 실효성은 여전히 체감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지구촌 곳곳의 지역사회에는 직접 위기 대응에 나서야겠다고 느끼는 보통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자원을 함께 나누고 취약한 이웃을 돕는 대담하고 혁신적인 방식을 만든다. 혁명적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운동과 연계를 맺으며 벌어지는 구조 활동, 이른바 ‘상호부조’ 활동이다. 구급차 출동이 오래 걸리는 가난한 동네에서 주민들이 서로를 위해 응급 처치를 훈련하거나, 병원비가 없는 이들을 위해 임신중절 비용을 모금하거나, 과도한 경찰폭력이나 이민 단속에 맞서 범죄화된 대상을 숨겨주는 행동이 모두 상호부조 사례다.

〈21세기 상호부조론〉은 저소득층 유색 인종 성소수자를 위해 법률구조를 지원하는 미국 단체 ‘실비아 리베라 법률 프로젝트’를 설립해 운영하는 변호사이자 사회운동가인 딘 스페이드(Dean Spade)가 제안하는 상호부조 방법론을 담고 있다.

‘상호부조와 관련하여 새로운 것은 없다. 인류의 역사 내내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협력해왔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식민주의가 수립한 구조는 사람들이 역사 속에서 서로 연결되던 방식과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모두 공유해온 방식을 파괴해버렸다. 사람들이 임금노동과 사적 소유의 시스템 속에서 살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부가 더욱 집중되자, 우리가 서로를 돌보던 방식은 점점 더 하찮은 것으로 치부됐다.’

자본주의와 식민주의가 수립한 임금노동과 사적 소유 구조는 부를 소수에 편중되게 했다. 현재 인류는 생존을 위해 경쟁하고,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 국가가 운영하는 시스템, 공공 서비스에 의존하고 있다. 더욱이 돌봄과 좋은 삶을 누리도록 하는 상호부조 활동은 충분히 급진적인 행위가 되며 때로는 범죄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저자는 좌파 사회운동에 두 가지 과제가 있다고 진단한다. 첫째는 파국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이 생존하도록 돕기 위한 ‘조직화’, 둘째는 이 위기의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도록 대다수 민중이 저항에 참여하도록 하는 ‘확장’이다. 그리고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할 방법이 바로 상호부조 프로젝트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상호부조 단체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다양한 체크리스트와 노하우를 수록한 가이드북이다. 민주적인 집단문화를 구축하고 합의형 의사결정을 도출하는 과정, 권한을 나누어 가지는 지도력 자질, 구성원 개인의 과로와 번아웃을 예방하는 방안, 갈등 상황을 조율하고 즐겁게 활동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윤이나 위계에서 벗어나 지구에 파괴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먹고 소통하며 대피하고 이주하며 치유하고 서로를 돌보는 세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미래 위기에 대비한 민중의 연대로서 상호부조 단체의 가치와 가능성을 전망하고 그 실행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다. 딘 스페이드 지음/장석준 옮김/니케북스/256쪽/1만 5800원.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