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해양수산 기업의 성장 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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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부경대 총장

K-콘텐츠 이어 K-푸드 국제적 인기
수산기업의 세계 시장 진출은 미미
대규모 투자 자금 확보 어려워 한계
글로벌 기업 키우기 위한 정책 필요

최근 인기를 모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넷플릭스를 통해 비영어권 1위를 차지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우영우가 좋아하는 김밥 역시 외국에서 인기가 많다. 이미 ‘오징어 게임’, ‘기생충’ 등 K-콘텐츠가 세계에서 열풍을 일으키면서 여기에 등장한 달고나와 짜파구리가 인기를 끈 것과 마찬가지다. 이같이 K-푸드에 대한 세계의 높은 관심에 힘입어 한국 농수산식품 수출은 지난해 처음으로 100억 달러를 돌파하고, 올 상반기 62억 1000만 달러로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K-푸드의 세계화 속에 CJ제일제당, 오리온, 농심, 동원 등 식품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진출이 활발하다. K-푸드 세계화는 수산기업에도 글로벌 시장에서 외연을 한 단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수산 분야에서는 동원 등 극히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글로벌 수산기업이라 부를 만한 신생 기업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 시점에서 수산 분야에 제2, 제3의 동원과 같은 기업이 출현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이 필요하다.


수산업계의 경우 중소→중견→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성장 사다리가 점차 약화되는 추세다. 과거에는 기업이 연안에서 근해로 나아가고 근해에서 성장한 기업이 원양으로 진출하면서 선단을 형성해 규모화를 이뤄내는 성장 사다리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연안과 근해는 협동조합에 갇혀 있고 원양은 각국의 규제로 기존 입지를 잃어 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수산식품이나 가정간편식(HMR), IT 플랫폼 관련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등장한 수산 분야 스타트업 기업들이 성공적으로 시장에 자리를 잡지 못하거나 일정 단계를 넘지 못하고 도산하는 사례가 많다.

세계 수산업계를 주름잡고 있는 연어 양식·가공의 MOWI, 어업과 수산식품 가공의 마루하니치로, 세계 최대 참치 기업 타이유니온 등 대표적인 글로벌 수산기업은 어떻게 지금의 위치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걸까? 이들 기업은 사업 다각화와 함께 성장 가능성에 대한 신뢰와 평판을 준비하고 기업공개(IPO)를 통해 증권시장에 상장을 진행한 게 공통점이다. 이러한 상장 수산기업들은 성장 과정에서 새로운 사업 분야에 대한 도전과 혁신을 추구하고 대규모 자금을 주식시장에서 조달해 투자와 성장을 이뤄내는 데 성공했다. 작은 가내 수공업을 기반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사례도 있다. 태국의 김 스낵 기업으로 유명한 타오케노이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2004년 작은 가건물 공장에서 태국식 김 스낵을 손으로 가공해 포장하는 제조업체에 불과했으나, 2015년 태국 증시 상장을 통해 현재 연 매출액 2000억 원, 해외 매출 비중 60%를 넘는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했다. 타오케노이는 상장과 대규모 자금 조달 후 2016년 제2 생산공장 건립, 2017년 미국 캘리포니아 시장 진출, 2019년 코스트코 납품 등으로 빠르게 세계 시장을 넓히고 있다.

국내 수산기업들의 코스피·코스닥 상장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동원, 사조, 신라, 한성 등 중견·대기업을 중심으로 활발히 이뤄졌다. 하지만 이후 명맥이 사실상 끊겨 버린 실정이다. 2013년 벤처기업과 초기 중소기업을 위한 코넥스 시장이 개장됐으나 현재까지 여기에서 상장된 수산 분야 기업은 3개사에 그치고 있다.

지금 식품 분야는 식품과 기술이 결합하는 푸드테크가 신산업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원료 생산, 식품 가공, 외식·유통산업에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 빅데이터는 물론 세포배양 기술까지 결합되면서 기존 식품을 대체할 기세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푸드테크 기업에 대한 투자가 본격화되고 있지만, 우리는 신산업 투자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해양수산 기업의 약화된 성장 사다리를 강화하기 위해선 정부 보조금 지급 정책도 필요하지만 투자금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해양수산 중소기업의 증시 상장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해양수산 우수 기업 선정, 코스피·코스닥·코넥스 상장 과정을 지원할 전문가 컨설팅, 상장 소요 비용에 대한 획기적인 지원, 기존 상장기업의 노하우 공유와 전수를 위한 네트워크 구축이 절실하다.

해양수산 분야에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춘 우수 기업과 신생 기업이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4차 산업 분야와의 결합에 필요한 투자금 부족을 극복하지 못하는 데다 증시 상장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해양수산 분야의 많은 벤처기업과 중소기업, 중견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성장 사다리가 이어질 수 있도록 실효성을 가진 해양수산 정책이 펼쳐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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