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조사 결과-1] 사망자 600명 넘어서…‘국가범죄’ 재확인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정근식 위원장(왼쪽)이 24일 중구 위원회 사무실에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정근식 위원장(왼쪽)이 24일 중구 위원회 사무실에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여 년간 수백 명의 수용자들이 죽어나가고, 불법감금과 폭행, 성폭력 등 최악의 인권유린이 발생했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사망자가 기존 552명에서 100명 이상 늘어난 657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내무부, 국군보안사령부, 부산시, 경찰 등 국가가 전방위로 개입해 형제복지원이 수용자들의 인권을 짓밟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부역했다는 점도 추가로 밝혀져 명실상부한 ‘국가범죄’로 재확인됐다.


■사망자 100명 이상 추가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는 24일 오전 10시 진실화해위원회 대회의실에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앞서 진실화해위원회는 전날 오전 제39차 위원회를 열고 ‘형제복지원 인권침해사건(1)’에 대해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이라고 판단하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이번 조사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기관의 최초 진상 규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20년 12월 10일 형제복지원 사건을 1호 사건으로 접수했다. 지난해 5월 조사 개시 이후 1년 3개월 만에 첫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이번 진실규명은 전체 신청자 544명 가운데 2021년 2월까지 접수된 191명을 대상으로 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35년 만에 △부랑인 단속 규정의 위헌‧위법성 △형제복지원 수용과정의 위법성 △형제복지원 운영과정의 심각한 인권침해 △의료문제 및 사망자 처리 의혹 △정부의 형제복지원 사건 인지 및 조직적 축소‧은폐시도 등을 밝혀냈다.

우선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를 통해 형제복지원의 공식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망자가 언급된 모든 자료, 형제복지원 소식지 <새마음>과 신상기록카드, 영락공원 가매장 명단 등을 비교 검토해 사망자 수가 657명이라는 사실을 새로 밝혀냈다. 현재까지 알려진 형제복지원의 공식 사망자 수(1975~1988년)는 552명이었지만, 이보다 100명 이상 추가된 셈이다. 이는 형제복지원 측의 부실한 사망자 처리와 절차, 기록 조작 때문이라고 진실화해위원회는 전했다.

신속한 응급환자 후송을 회피·지연해 ‘응급 후송 중 사망(DOA)’ 사례가 매우 높은 비율로 나타났고, 사망진단서 대부분이 ‘병사’로 조작된 정황도 확인됐다. 이와 함께 사망자의 기본적인 신상정보가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사망자 처리 서류에 ‘연고자 시신 인계’로 기재하는 등 허위 문서 작성이 빈번했고, 사망자 시신을 형제복지원 뒷산에 암매장해 온 사실도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전두환 씨와 악수하고 있는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 부산일보DB 전두환 씨와 악수하고 있는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 부산일보DB

■경찰은 ‘하수인’ 역할, 군은 ‘공작 침투’

진실화해위원회의 이번 조사는 국가 기관이 형제복지원 사건에 어떻게 불법적으로 개입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선 무차별한 부랑인 단속과 형제복지원의 수용 근거인 내무부 훈령 제410호의 위헌·위법성을 확인했다. 이 훈령은 시·군·구청과 경찰이 합동으로 구성한 부랑인 단속반이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을 어떠한 형사절차도 거치지 않고 마구잡이로 수용시설에 보내 기한 없이 감금하게 했다. 내무부 훈령 410호는 법률유보 원칙과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 원칙, 적법절차 원칙, 영장주의 원칙, 체계 정당성을 모두 위반했던 것이다.

경찰이 형제복지원에 어떻게 협조했는지 구체적인 정황도 드러났다. 진실화해위원회는 1985~1986년 부랑인 단속과 형제복지원 인계에 동원된 부산 경찰 수가 2700여 명이었다고 전했다. 당시 부산시 경찰 총 정원이 5808명임을 감안한다면, 경찰 전체 인원의 절반 이상이 부랑인 단속에 동원된 것이다. 시민을 위해 복무해야할 경찰이 사실상 형제복지원의 ‘하수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밖에도 국가보안법, 국방경비법, 반공법 위반자들이 신원특이자로 구분돼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되고 감시당한 것도 새롭게 드러난 부분이다.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 요원이 형제복지원에 침투해 공작활동을 벌였다는 점도 이번 조사에서 새로 밝혀졌다. 보안사는 형제복지원에 수용돼 있는 납북귀환어부 김 모(당시 29세) 씨를 감시하기 위해 보안사 요원을 위장 침투시켰다. 보안사는 1986년 5월 8일 이 수사공작을 ‘갈채공작’으로 명명하고 승인했다. 당시 보안사는 형제복지원에 대해 ‘교도소보다 더 강한 규율과 통제를 하는 곳’으로 판단하는 등 인권침해 실상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문제 해결은 뒷전이고 잠재적 불순분자를 색출하러 공작 활동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국가기관의 박인근 비호

이번 진실규명을 통해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 주재로 관계기관이 모여 형제복지원 대책회의를 했다는 보안사 문건도 최초로 공개됐다. 1987년 3월 24일 안기부 2국장 주재로 안기부 회의실에서 ‘형제복지원 관련 관계기관대책회의’가 열렸다. 형제복지원 원생 30여 명이 집단 탈출해 복지원 실태를 폭로하고, 다음 날에 대책회의가 열린 것이다. 3월 26일에는 청와대 정무 2수석, 안기부 2국장, 내무부 차관, 대검 차장, 치안본부장, 총리비서실장, 부산시 부시장 등 고위급이 참석한 가운데 형제복지원 개편 방안을 논의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와 함께 부산시와 경찰, 안기부 등 부산지역 모든 기관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축소, 은폐한 것으로 확인했다. 특히 부산시는 피해자와 가족들의 진정‧소송을 회유하고, 원장과 측근들이 다시 형제복지원 법인을 장악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시의 일관된 박인근 비호 시도는 유별나다. 특히 박인근이 구속된 다음날인 1987년 1월 18일 부산시 박인근이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을 수 있도록 보건사회부에 건의까지 할 정도였다.


2차 공사로 개조된 형제복지원 정문. 부산일보DB 2차 공사로 개조된 형제복지원 정문. 부산일보DB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진실화해위원회는 정부에 몇가지 권고 사항도 제시했다. 우선 국가가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분명히 했다. 이어 국가가 피해 회복과 트라우마 치유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국가는 각종 시설에서의 수용·운영 과정에서 피수용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시행하고, 국회는 올 6월 2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유엔 강제실종방지협약’을 조속히 비준 동의할 것을 촉구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부산시에 대해서도 형제복지원 피해자의 조사와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을 위해 적합한 예산, 규정, 조직을 정비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은 “2005년 출범한 1기 진실화해위원회에 3건의 시설 강제수용 신청 건이 접수되었으나 당시에는 시설수용 문제를 ‘국가범죄’로 인지하지 못했다”며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형제복지원 사건이 국가에 의한 총체적 인권침해 사건임을 종합적으로 규명하였다”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또 “오랜 시간 기다려온 형제복지원 사건의 인권침해 진실이 드러난 것은 피해자와 유가족, 사회단체 등이 기울인 노력의 결과”라며 “2기 진실화해위원회 출범의 계기가 된 이번사건에 대한 종합적인 진실규명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