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도권 공장총량 무력화, 헛발질하는 균형발전
경기 화성에 기아차 공장 신·증축 허용
말은 지방시대 현실은 수도권 공화국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 규제혁신 TF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또 수도권 공장총량제 규제완화를 통해 대기업의 대규모 공장 건립을 허용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5일 ‘제2차 경제규제혁신 TF’ 회의를 열고 수도권 공장총량제 미집행 물량을 활용해 기업의 공장 신·증축 물량을 추가 배정한다고 밝혔다. 기아차가 경기도 화성에 4000억 원을 투자해 공장을 신·증축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다. 이미 수도권에는 공장 수요가 차고 넘친다. 돈과 인력이 다 몰려 있기 때문이다. 그대로 두면 과밀화와 난개발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 때문에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수도권 공장총량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정부가 앞장서 이를 무력화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미 수도권 공장총량을 3년마다 재평가해 늘리면서 규제의 틈을 만들어 놓았다. 이 틈을 이용해 미집행 물량을 기존 인허가 물량에 추가하면 공장총량제의 의미가 사실상 없어진다. 정부는 앞서 신·증축 중인 평택·용인 반도체 단지의 인프라 구축 비용을 국비로 지원하고 용적률도 350%에서 490%로 올려 준 바 있다. 반도체산업에 이어 자동차산업도 정부가 나서 수도권 집중을 돕고 있는 꼴이다. 새 정부 들어 국내 유턴기업의 수도권 경제자유구역 입주도 허용했다. 이에 더해 337조 원 규모의 업종별 기업 투자에 대한 규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 수요도 수도권에 몰릴 수밖에 없어 수도권 집중이 가속화할 전망이다.
새 정부는 겉으로는 지방시대를 내세우며 균형발전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구호만 요란할 뿐 실제 정책은 수도권 집중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게 심각한 문제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6일 “윤 대통령 임기 내에 대기업 3~5곳과 주요 대학, 특수목적고의 지방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역으로서는 절실한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난관이 많아 구호에 그칠 공산이 크다. 정부가 첨단산업 육성을 명분으로 수도권 대학 정원 제한 완화에 앞장서고 있는 게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국토부는 내년도 균형발전특별회계 예산을 2조 1900억 원으로 올해 3조 4100억 원에서 3분의 1이나 깎았다.
윤석열 정부의 이 같은 엇박자는 결국 균형발전에 대한 철학의 부재 때문으로 보인다. 균형발전은 단순히 지방이 못살겠다고 난리니 떡이나 나눠 주며 달래자는 것이 아니다. 공공기관 하나 지역에 던져 준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수도권 집중은 이미 망국적 상황에 이르고 있다. 규제 완화의 수요가 왜 수도권에만 몰리고 있는지 근본적 성찰이 없으면 제대로 된 균형발전 정책을 세울 수 없다. 지금이라도 바로잡지 않으면 국가의 미래가 없다는 것이 균형발전의 시대적 요구다. 결국 국정 철학의 문제라는 것이다. 균형발전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나마 이 정부가 균형발전에 대한 진정성은 있다는 전제하에서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