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민의 기후 인사이트] 태풍 힌남노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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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일본 남쪽 해상 태풍 발생은 처음
고위도 바다의 이상 고온이 원인
우리나라 상시적 피해 가능성 커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태풍 힌남노가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에 대해 짚어 보고자 한다.

힌남노는 2005년 미국 플로리다에 상륙해 뉴올리언스를 초토화시키고 12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못지않은 수준이었다. 해상에서 오랜 기간 머물면서 세력을 키웠던 힌남노는 우리나라 상륙 직전 중심기압이 956hPa로 다소 약해졌다고는 해도 상륙 이후에는 남부 지방을 관통하며 이 지역에 큰 피해를 안긴 채 빠르게 한반도를 빠져나갔다. 특히 포항에 시간당 100mm가 넘는 엄청난 양의 비를 뿌렸고 순간적으로 들이닥친 물폭탄에 강변에 위치한 어느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완전히 물에 잠겨 여러 명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소식이 이어졌다. 태풍이 관통한 부산지역 역시 송정해수욕장을 비롯하여 해안 곳곳이 침수되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태풍 힌남노가 우리나라를 관통하는 시점을 전후로 여러 언론사들로부터 필자에게 연락이 왔다. 올여름 수도권을 강타한 역대급 폭우에 이어 또다시 초강력 태풍이 남부지방을 초토화시켰으니 언론 입장에서는 기후변화와 이번 태풍의 관련성이 많이 궁금했으리라. 과연 힌남노는 기후변화가 초래한 결과물이었을까. 앞으로 힌남노보다 더 강력한 태풍이 우리나라를 덮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임은 분명하나 힌남노를 유심히 살펴본 필자로서는 힌남노가 기존 태풍들과는 태생부터 매우 달랐음에 주목하게 되었고 이것이 기후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힌남노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태풍이 발생한 지역이다. 힌남노는 보통 태풍이 자주 발생하는 열대 바다인 필리핀 해상이 아니라 이보다 훨씬 북쪽에 위치한 일본 남쪽 해상에서 발생하였다. 이렇게까지 위도가 높은 지역에서 태풍이 발생한 것은 관측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원인은 남해와 우리나라 인근 동중국해의 뜨겁게 달구어진 바닷물 온도였다. 결국 태풍을 성장시키는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은 뜨거운 바닷물이다. 바닷물 온도가 1도 올라갈 때마다 바다가 내뿜는 수증기의 양은 약 4~7%씩 증가하게 되는데 이 수증기가 응결할 때 나오는 엄청난 열기는 태풍을 성장시키는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따라서 바닷물의 온도는 태풍의 발달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가장 주요한 지표가 된다.

올해 우리나라 남해와 동중국해 바다는 주요 태풍 발생지역인 필리핀 해상보다 뜨겁게 달궈진 상태였고 간간이 30도를 넘는 지역이 보일 정도로 매우 뜨거웠다. 한마디로 태풍이 발생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뜨겁게 달궈져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다 태풍 발생 조건에 필요한 약한 바람까지 맞아떨어지면서 태풍이 역사상 한반도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태어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올해는 왜 이렇게 한반도 인근 바다가 뜨겁게 달궈졌을까. 많은 과학자들이 라니냐 현상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보통 4~5년 주기로 한 번씩 발생하는 라니냐 현상이 나타나면 적도 서태평양 바닷물 온도가 뜨거워지는데 이때 서태평양의 뜨거워진 바닷물이 해류를 타고 북쪽으로 대륙의 연안을 따라 이동하면서 중위도 지역 바닷물도 뜨거워지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 남해와 동중국해는 대표적으로 라니냐 때 바닷물이 뜨거워지는 곳에 속한다. 그런데 보통은 한 해 정도 발생하고 사라지는 라니냐가 2020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3년째 지속하면서 우리나라 인근 바다들을 유례없이 뜨겁게 달구었고 이는 분명 이번 태풍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3년이나 지속된 라니냐 발생이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단정짓기는 아직 어렵다.

문제는 이번과 같은 이례적인 라니냐가 아니더라도 기후변화로 인해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 등 동아시아 연안국들 주변의 바닷물 온도가 매우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속도는 전 지구 평균에 비해 무려 2~2.5배에 달한다. 즉, 이번 힌남노의 경우를 비추어 보았을 때 태풍이 더 이상 열대 해상에만 국한되지 않고 얼마든지 우리나라 주변 바다에서 태어나고 바로 상륙할 가능성이 열렸다는 뜻이다.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기후위기가 심화된다고 해서 모든 기상재해들이 더 강력해지고 빈번해지는 것은 아니다. 기후 과학자들은 여전히 극단적 기상현상들과 기후변화의 관련성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특정 기상재해의 경우 더욱 강력해질 것이 뻔히 눈에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나라 주변 바닷물 온도의 급격한 상승이 바로 그러하다. 그 추세가 너무 선명하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과학적 근거 역시 명확하다. 기후위기로 인한 바다의 습격이 시작되고 있음을 힌남노는 경고했다.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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