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절벽에 물량 쏟아지는 9월 ‘이사 대란’
부산서만 6275세대 신규 입주
주택 거래 급감해 전세 안 나가
입주 자금 마련 못 해 발만 동동
입주 몰린 지역선 전세 급매 속출
전세 가격 지난해 절반 수준까지
계약갱신청구권 없이 전세 연장
부산 부산진구에 9월에만 4000세대 이상 신규 입주 물량이 쏟아져 이사 대란이 심화하고 있다. 부산진구 연지래미안어반파크 전경. 정대현 기자 jhyun@
이달 말 부산 부산진구 한 신축 아파트에 입주 예정인 A 씨는 최근 전셋집 주인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전세가 나가지 않아 계약만기일에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전세금 6000만 원을 깎아 내놓았지만 3개월 동안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 A 씨는 입주를 제때 못할 경우 매달 80만 원가량의 중도금 연체 이자를 물어야 할 판이다. 집주인에게 집을 담보로 전세금반환대출을 받아서라도 전세금을 돌려 달라고 해봤지만, 다주택자여서 대출을 못 받는다는 답변을 들었다. A 씨는 “입주일은 다가오고, 전세는 안 나가서 속이 타들어간다”며 “중도금 연체 이자를 누가 내야 할지 다퉈야할 판”이라고 전했다.
부산지역의 주택 거래가 급감하면서 이사를 하려는 실수요자의 발이 묶이고 있다. 특히 신축 아파트 입주예정자 중 제때 입주를 못할 위기에 처한 이가 속출하고 있다. 업계는 실수요자의 정상 거래를 위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19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부산지역 아파트 입주 물량(임대 제외)은 모두 1만 6593세대이다. 이 중 9월 입주 물량은 전체 40%에 가까운 6275세대다. 연지래미안어반파크(2484세대), e편한세상시민공원(1329세대), 오션파라곤(662세대), 가야롯데캐슬골드아너(640세대), 남천더샵프레스티지(924세대) 등 대형 아파트 단지가 입주를 시작했거나 예정이다.
이들 대규모 단지는 부동산 거래 절벽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전세와 매매 거래가 실종되면서 입주예정자들이 입주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규모로 발생하고 있다. 개금동 한 부동산 중개인은 “인근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가려고 6개월 전부터 집을 내놓은 구축의 집주인이 매매가 안돼서 급하게 전세로 돌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새집으로 이사하는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집주인들이 무조건 팔아 달라고 요청하지만, 수요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특히 9월에만 4664세대가 입주하는 부산진구의 신축 단지는 전세를 중심으로 급매물이 속출하고 있다. 래미안연지어반파크와 e편한세상시민공원 등 신축 단지의 30평형 아파트 전세가격이 3억 원대에 형성돼 있다. 지난해 부산의 30평형 신축 아파트 전세가격이 통상 5억~6억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부산시민공원 인근 25년 차 단지인 현대1차의 31평 전세가(2억 5000만~3억 2000만 원)와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부산진구의 입주 물량이 넘쳐 나면서 이 지역 세입자 중에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는 이도 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전세금을 5% 이내 인상하면서 2년 더 거주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는 세입자가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계약갱신청구권 대신 그냥 계약을 갱신을 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은 1번만 쓸 수 있고, 사용할 경우 집주인들이 대부분 5% 전세금을 올리기 때문에 세입자들이 굳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거래 절벽이 장기화할 경우 이사 대란이 더욱 심각해질 것을 우려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부산지부 박상만 부지부장은 “이사를 통한 정상적인 부동산 거래마저 막히면 깡통전세 등 사회적 악영향은 커질 수밖에 없다”며 “현재로서는 조정대상지역을 해제하고 다주택자 대출 규제와 취득세 중과라도 완화해야 거래 숨통이 트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지연 기자 sj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