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춤판은 창조·생성의 판… 경계 허물며 새 예술로 나아가야”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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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미학연구소 학예굿

한국민족미학회와 공동 주최
복원 중인 가락오광대 시연
원로·소장 등 20명 열띤 토론
“1980년대 이후 전승사 필요”
“연희 적합한 형태 변화” 주장도

민족미학연구소와 한국민족미학회가 지난 22일 부산대 인덕관에서 ‘한국탈춤의 생성미학적 접근’을 주제로 개최한 학술 행사에서는 탈춤의 신명과 창조력을 어떻게 살려갈 것인가를 놓고 열띤 발표와 토론이 벌어졌다. 사진은 봉산탈춤의 한 장면. 문화재청 제공 민족미학연구소와 한국민족미학회가 지난 22일 부산대 인덕관에서 ‘한국탈춤의 생성미학적 접근’을 주제로 개최한 학술 행사에서는 탈춤의 신명과 창조력을 어떻게 살려갈 것인가를 놓고 열띤 발표와 토론이 벌어졌다. 사진은 봉산탈춤의 한 장면. 문화재청 제공

지난 22일 부산대 인덕관에서 탈춤의 큰 학술 잔치판, 이름하여 학예굿이 열렸다. (사)민족미학연구소(이사장 엄옥자)와 한국민족미학회(회장 박준건)가 공동 주최한 행사에는 민속학계와 미학계 원로에서 소장에 이르기까지 20명의 연구자·연희자가 발제와 토론을 벌이고, 현재 복원 중인 가락오광대를 시연했다. 이번 학술굿의 주제는 ‘한국탈춤의 생성미학적 접근’이다.

탈춤은 민속예술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향한 시대적 전망과 열정이 담긴 그 무엇이라는 것이다. 어느덧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듯한 세태 속에서 시대에 대한 전망을 계속 살려나가야 한다는 뜻이 ‘생성미학’의 근저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속학계의 정상박 동아대 명예교수는 기조발제 ‘탈춤 전승의 실상과 과제’를 통해 “시대적 모순과 싸워온 탈춤을 무형문화재로만 지정해 전승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라며 “탈춤은 변화 확장하는 새로운 예술의 생성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채희완 부산대 명예교수는 기조발제 ‘탈춤에서는 판을 어떻게 열고 있나’를 통해 “길놀이와 고사굿은 일상과 연희, 성과 속이 하나 되는 탈춤판의 ‘의미 깊은 열림 의식’으로 배제해서는 안 된다”며 “생동하는 판의 기록방법론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탈춤을 박제된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며, 이와 함께 역사와 시대에 대한 열망의 상실을 깊이 통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기층민중이 역사 창조의 핵심 세력이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탈춤에 접근했다”는 1970~80년대의 초심을 끊임없이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채 명예교수는 “21세기 문화는 탈춤과 마당연희가 확보한 ‘사회적 영성’의 구현을 통해 생명미학의 지평을 열어젖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조발제에 이어 다양한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허용호 경주대 특임교수는 주제발표 ‘탈춤 전승의 사회문화사’를 통해 “원형 전승과 다른, 문화운동 차원에서 탈춤의 창조적 전승 역사는 1970년대 부분 정도만 정리돼 있다”며 “아직 시도조차 하지 않은 1980년대 이후 역사를 써야 하며, 나아가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차원의 탈춤 전승사를 써야 한다”고 했다. 황병권 진주오광대 예능보유자 후보는 생성과 변화 측면을 다른 차원에서 강조했다. 그는 주제발표 ‘진주오광대탈의 생성과정과 전승’을 통해 “과거에 탈은 벽사 의식무의 탈이었으나 지금은 연희자 예능에 적합한 탈로 바뀌고 있다”며 “탈춤의 생성미학 관점에서 볼 때 탈 제작 역시 원형을 그대로 복원하기보다는 연희에 적합한 형태로 변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에 나선 김봉준 화가는 “탈춤 정신의 매개가 되는 탈은 신과 인간이 이중 교호하고, 더 깊은 아우라가 발생하는 탈이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서지연 통영오광대 이수자는 주제발표 ‘통영오광대 배김사위를 통해 본 덧배기춤의 특징과 생성요인’을 통해 “경상도 탈춤의 기본적인 덧배기춤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인(天人)이 지신(地神)과 합일하는 장면을 묘사한 우주적 춤”이라며 “통영오광대 전승 역사에서는 통제영 악사들의 계조직과 탁월한 춤꾼으로 1966년 타계한 장재봉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어 허창열 천하제일공작소 대표는 주제발표 ‘흐르는 탈춤’을 통해 “탈춤은 경계 없는 춤으로, 경계를 허물고 풍성해지면서 예전처럼 지금도, 앞으로도 흘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심상교 부산교대 교수는 동래야류를 중심으로 해서 ‘민속극의 대사표현 방식과 극적 성격 재론’을 주제발표했다. 그는 “동래야류는 동래 민속과 문화현상만 반영한 것이 아니라 19세기 말 전국에서 공유되던 대표적 문화현상을 복합적으로 반영한 것”이라며 “비극과 희극, 나아가 은유와 환유를 한 작품 안에 뒤섞여 놓았다”고 했다. 최찬열 민족미학연구소 연구위원은 주제발표 ‘탈춤 판과 생명’을 통해 “언제나 다른 무엇이 들어올 수 있고, 그럴 때마다 판 전체가 변하는 탈춤판은 창조와 생성의 판”이라고 했다.

정형호 무형문화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제발표 ‘탈춤의 전승방식과 미학적 지향’을 통해 “변화한 세상 속에서 신명의 축제가 더 이상 필요한가 라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지만 심리적 불안감이 많은 현대인에게 외려 억눌린 생명력을 끌어낼 수 있는 집단적 신명풀이가 더 필요하지 않은가”라고 지적했다. 토론에 나선 임재해 안동대 명예교수는 “유튜브 특성을 고려한 탈춤 창작이 필요하고, 더 모험적이고 전위적인 갈래 개척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번 학술굿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서로 충돌하는 듯 보이는 견해도 따로 표출됐고 상당한 반대 토론도 진행됐다. 그것이 굿판이다. 이번 학예굿이 던지는 물음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방향을 잃지 않고 탈춤의 신명을, 시대와 역사를 역동적으로 계속 만들어가고 있는가.’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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