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 안 밝히고 “진상 밝혀져야”… 정쟁만 키우는 ‘비속어 해명’
순방 후 첫 출근길 문답 나선 윤 대통령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 훼손했다”
국힘, MBC와 민주당 정언유착 규정
민주 “거짓 해명”… 참모진 경질 촉구
영국·미국·캐나다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미 순방 당시 ‘비속어 논란’이 정답 없는 ‘듣기 평가’가 된 듯하다. 윤 대통령은 26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 문답에서 해당 논란에 대해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했다”며 진상 규명까지 언급했지만, 보도의 어느 부분이 사실과 다른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보도의 진위를 둘러싼 논쟁은 미스터리로 남아 두고두고 정쟁거리로 소모될 가능성이 커졌다.
MBC가 첫 보도를 할 당시에는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해석’에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지만, 이후 대통령실은 ‘이 XX’는 미 의회가 아닌 한국 야당을 지칭한 것이며, ‘바이든이’는 ‘날리면’이라고 반박했다.
여기에 여당인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이 “‘이 사람들이’ 승인 안 해주고 ‘아 말리믄’ 쪽팔려서 어떡하나”(배현진 의원) “국회에서 ‘이 사람들이’ 아 승인 안 해주면 쪽팔려서 어떡하나”(박수영 의원) 등 또 다른 해석을 하면서 이 문제는 이제 지지층 별로 ‘바이든’과 ‘날리면’으로 해석이 갈리는 정치적 논쟁으로 변질됐다.
이들 의원은 ‘이 XX’ 발언도 부인했는데,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추가 해명에서 “‘이 XX’라는 표현이 야당을 지목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당초 해명과는 또 다른 해석을 내놓은 것이지만 ‘이 XX’라는 발언이 있었다는 점은 재차 인정한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문가들도 명확히 말하길 꺼려한다. 실제 한 방송사는 해당 발언이 나온 직후인 지난 23일 음성 분석 전문가, 교수, 기관 등 10여 곳과 접촉했지만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번 음성을)100번 가까이 들었다. 들어보니까 ‘ㅂ’과 ‘ㄹ’이 같이 들어간 것 같다”면서 ‘바이든’도 ‘날리면’도 아닌 ‘발리면’(일방적으로 패하다는 의미의 속어)이라는 새 주장을 폈다. 온라인 상에는 정치적 입장을 떠나 ‘ㅂ’ 발언은 확실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해당 발언이 나온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당시 바이든 대통령이 주최한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서 1억 달러의 공여 약속으로 큰 호평을 받은 이후 회의장을 빠져나오면 문제의 발언을 했다. 윤 대통령이 미 ‘의회’가 아닌 ‘국회’라고 한 것이나 박진 외교부장관이 윤 대통령의 발언을 받아 ‘야당을 잘 설득해 예산을 통과시키겠다’고 답한 것을 볼 때, 1억 달러 공여 약속을 다수당인 야당이 거부하면 면이 안 선다는 의미라는 대통령실의 해명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 때문에 여권 일각에서는 ‘바이든이’가 아니라 ‘바이든에’가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즉 바이든 대통령의 이름을 언급했지만 조사가 ‘에’이거나, 아니면 윤 대통령이 부정확한 조사를 쓴 것 아니냐는 얘기다.
윤 대통령이 이날 비속어 논란을 부인하며 정면돌파에 나서자 이를 둘러싼 여야의 공방도 격화됐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 비속어 논란을 ‘가짜뉴스’ 프레임으로 전환 시도하며, 나아가 더불어민주당과 MBC의 ‘정언유착’을 논란의 원인으로 규정했다. 이번 논란에서 밀릴 경우 국정 지지도 하락세를 막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당 회의에서 MBC를 향해 “(윤 대통령 워딩에)자의적이고 자극적인 자막을 입혀 보도했다”고 밝혔다.
MBC 첫 보도가 나오기도 전에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을 비판하는 공개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며 민주당과 MBC의 유착 의혹도 키웠다. 방송통신위원회를 관장하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C에 대한 법적조치를 예고했다. 이들은 MBC 박성제 사장 사퇴와 사과방송, 보도 관련자 명예훼손 고발 등을 언급했다.
민주당은 외교라인과 대통령실 참모진의 대대적인 경질을 거듭 촉구하고 나섰다. “사실과 다른 보도”라는 이날 윤 대통령의 발언은 ‘거짓말 해명’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당 최고위에서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은 도청 장치보다 거짓말이 화근이었다”라며 “전두환 정권은 ‘탁 치니 억 하고 박종철 열사가 죽었다’는 거짓말이 탄로 나 몰락했다”고 논란의 정치적 무게감을 부각했다.
관련 인사들의 경질 요구 목소리도 키웠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같은 회의에서 “이번 순방 책임자인 박진 외교부 장관을 즉각 해임하고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김태호 안보실 1차장, 김은혜 홍보수석 등 외교·안보 참사 트로이카를 전면 교체하라”며 “내일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민주당과 궤를 같이했다. 정의당 이은주 비대위원장은 “김은혜 홍보수석의 해명이 사실이라면 이번 욕설 파문은 ‘국회 부정’이자 ‘국정 독주 선언’이라며 외교라인의 대대적 교체와 김 수석의 경질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 민지형 기자 oas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