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래의 메타경제] 뉴딜이 안 보인다
신라대 글로벌경제학과 명예교수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 성과가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발등의 불이 되어 버린 전기차 보조금 문제를 풀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기 때문이다. 향후의 접촉을 더 기다려 보아야 하겠지만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전기차 보조금 문제 때문에 널리 알려졌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16일 서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사실 인플레이션 정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인플레이션 대책으로 전기차 보조금 지급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때문에 당장 전기차 보조금 문제가 시급한 것은 맞지만,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미래 지향 정책
에너지·기후변화 대응이 핵심적 과제
정책적 가치와 메시지 놓쳐선 안 돼
집권과 함께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경제의 회복을 위한 큰 틀을 제시하였는데, 핵심은 크게 세 가지였다. 막대한 재원을 투입하여 인프라를 구축하고 에너지·기후변화에 대응하며 사회보장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무엇보다 대규모 재정지출을 수반한 인프라 구축을 앞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루즈벨트식 뉴딜과 흡사한 구상을 읽게 한다.
에너지·기후변화에 대한 대응과 의료보장 확대 정책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포함된 것으로 여기에 골치 아픈 전기차 보조금 지급 조항이 들어 있다. 전기차 보조금 문제를 별도로 보면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에너지와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복지정책을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더욱이 이에 필요한 재원은 법인세를 비롯한 세금을 더 걷고 세정을 합리화하겠다는 계획을 명확히 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바이든의 정책 틀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메시지를 읽는다. 우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이어 바이든 대통령도 인프라 구축을 위한 재정지출에 반대하지 않고 있다. 분명 정권이 교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재건에 필요한 지출 흐름은 계승하고 있다.
또한 인플레이션 감축이라는 이름 아래 실제로는 에너지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핵심 과제로 놓고 추진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견제와 같은 눈앞의 현안들이 두드러져 보이지만 실제로 미국이 하고 있는 정책은 미래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향후 세계경제에서 가장 큰 과제가 에너지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될 것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부문에 정책 역량을 쏟겠다는 것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더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세금을 더 걷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면 7600억 달러의 세금을 더 걷어 에너지·기후변화에 3000억 달러 그리고 의료보장 확대에 640억 달러를 쓰고, 나머지 3000억 달러는 재정적자 감축에 쓰겠다는 계획이다.
미국이 하면 항상 옳은 것이고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국에서, 왠지 바이든 정부의 정책 틀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가 되고 있지 않다. 대신 지금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경제정책의 핵심 철학들을 보면 작은 정부, 민간 부문 역할 강화, 감세와 재정건전성 강화 등의 기조가 지배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조들은 지금 미국의 정책 방향과 많이 다르다.
그러다 보니 지금 우리 정부가 시행하는 각종 정책들이 과연 미래를 향한 것인지 강한 의문이 든다. 신재생에너지의 보급을 위해 문재인 정부에서 시행하였던 태양광발전 사업이 환경파괴와 낭비적 투자가 많았다는 지적들이 있는데,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태양광을 포기하고 원전으로 가자는 것은 미래가 아닌 과거로 가는 것이다.
재정의 건전성을 도모한다면서 법인세와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 주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 결과는 사회보장성 지출의 감축으로 귀결될 것이 뻔한데도 정부는 부자감세를 효율적인 정책으로 생각하고 있다. 더구나 경제가 어렵고 국민들의 삶이 힘들 때는 정부 지출을 늘려 중요한 미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뉴딜 정신인데, 재정건전성의 틀에 갇혀 새로운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전기차 보조금 문제가 우리에게 당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인 것은 맞다. 그렇지만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담긴 정책적 가치와 메시지를 놓쳐서는 안된다.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것보다 미국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고, 재정지출에 인색한 것도 아니며, 중국과의 싸움에만 몰두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필요하면 뉴딜 정신의 가치를 이어 가는데 인색하지 않으며, 과거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작은 정책에 목숨 걸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미래를 내다보는 굵고 새로운 정책(뉴딜)들을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