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부활하는 파시스트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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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 근대의 모순이 폭발한 시기였다. 그중에서도 파시즘은 인류 역사에 가장 뼈아픈 비극이다. 이탈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임에도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그때 등장한 이가 베니토 무솔리니다. 그는 1919년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파시 디 콤바티멘토’(전투자 동맹) 조직을 만들었는데, 파시즘의 어원이 여기서 유래한다. 1921년 창당한 국가파시스트당의 의회 진출이 막히자 이듬해 쿠데타를 일으켜 로마로 진격했다. 그 결과는 세계 최초 파시즘 정부의 수립이었다. 무솔리니는 나치 독일의 히틀러와 함께 전 세계를 파시즘의 광기로 몰아넣었다.

21년 장기 독재는 1943년 막을 내렸지만 파시스트의 망령은 반세기 만에 되살아났다. 이탈리아공화국 정부를 40여 년간 굳건히 틀어쥔 기독교민주당이 총선에서 충격적으로 무너진 1994년이었다. 미디어 재벌이자 막대한 부동산을 소유한 부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그 중심에 있었다. 총선 2개월 전 급조된 정당 ‘전진이탈리아’ 중심으로 우파연합이 압승을 거둘 때, 무솔리니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극우 정당 이탈리아사회운동(MSI)도 승리자의 일원이 됐다.

25일(현지시간) 곡절 끝에 치러진 이탈리아 조기 총선에서 우파 연합의 승리는 파시스트 부활 우려를 한층 고조시킨다. 차기 총리를 꿰차게 된 조르자 멜로니는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총리’를 넘어 ‘무솔리니 이후 100년 만의 극우 집권’을 보여 주는 상징이다. 그녀는 15세 때 MSI의 청년 조직에 가입해 정치판에 뛰어든 뒤 2012년 MSI를 계승한 ‘이탈리아형제들(FdI)’을 창당했다. FdI는 이번 총선에서 우파연합의 다른 정파보다 훨씬 오른쪽에 위치한 최강의 극우 정당이다. 우파연합 내 가장 높은 득표율은 반이민 정책 같은 강한 우파적 일관성이 보수층에 먹혔음을 방증한다.

역사의 데자뷔랄까. 파시즘의 창궐은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한다. 독일, 프랑스에 이어 ‘유로존’ 3위 경제 대국 이탈리아의 위기가 유럽 전체로 번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지금 이탈리아 안팎의 시선 역시 착잡하기만 하다. 여기에 한국의 현실도 겹쳐서 보인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힘겨운 경제가 그렇고 사생결단식으로 충돌하는 정치권의 행태가 또한 그렇다. 진영·이념 갈등이 첨예화하는 사이, 어느새 극단화한 주장과 세력의 포로가 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파시스트의 부활, 남의 일이 아니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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