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찔끔 투자로 750억 규모 디지털자산거래소 지배?”
부산시 펀드 조성 통해 10억 출자
민간 업체 대상으로 ‘지배력’ 꿈꿔
회원제 방식으로 운영 형태 바꾸고
사업자 모집 공고 등 일정도 지연
금융 당국, 시 추진 방식에 ‘반대’
부산 디지털자산거래소 설립 난항
부산시가 추진하는 부산 디지털자산거래소가 일정 지연, 금융당국 반대 등 ‘난항’을 겪고 있다. 블록체인 창업공간 ‘비스페이스’가 입주해 있는 부산국제금융센터(BIFC) 전경. 부산일보DB
부산시가 디지털자산거래소 설립 추진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일정은 계속 지연되고 있고, 갑자기 바뀐 거래소의 운영방식은 얼개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게다가 거래소 설립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금융당국도 부산 거래소의 운영방식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29일 공고, 사실상 또 한 번의 지연
부산시는 올 5월 예비공고 성격인 정보제공요청서(RFI·Request For Information)를 통해 ‘6월께 디지털자산거래소 사업자 공모가 진행되고, 희망 업체들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모에 참여하라’고 밝혔다. 그러나 6월로 예정됐던 최종 사업자 모집공고는 그 후 석 달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고, 그 사이 부산시는 컨소시엄 입찰 대신 회원사를 모아 거래소를 운영하기로 방침을 변경했다.
컨소시엄 형태의 사업자 선정 방식이라면, 공모를 통해 선정된 컨소시엄 사업자만이 디지털자산을 거래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롭게 추진되는 회원제 방식의 경우 일정 조건을 갖춘 업체라면 누구나 회원으로 가입해 디지털자산을 거래할 수 있게 된다. 거래는 개별 회원사가 각자 알아서 하고 부산시는 중앙거래소의 역할을 맡는다는 취지다. 주식시장의 한국거래소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는 의미다. 주식 거래는 개별 증권사별로 이뤄지고, 한국거래소는 전체 시장 거래를 관리한다.
거래소 운영방식이 뒤바뀌면서 사업 추진 일정도 함께 지연됐다. 그러던 중 부산시는 오는 29일 ‘부산 디지털자산거래소 설립을 위한 전담운용기관 선정 제안요청서’를 시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고하기로 했다. 이달 중으로 최종 사업자 모집공고를 내겠다는 게 최근 부산시의 입장이었다.
정작 29일 공고될 제안요청서는 거래소를 지배하는 지주회사의 설립·운영을 맡을 전담기관 선정에 관한 내용이 전부다. 거래소 실무를 맡게 될 회원사를 모집하는 절차는 빨라도 올 연말께나 시작될 전망이다. 당초 6월에 나왔어야 할 사업자 모집공고가 반년가량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10억 지주회사로 750억 거래소 지배?
이번 제안요청서에 따르면, 공모를 통해 선정할 ‘전담운용기관’의 역할은 거래소 설립에 앞서 지주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지주회사는 총 750억 원 규모다. 시는 펀드 조성을 통해 초기 자본금 10억 원을 확보할 요량이다. 나머지 740억 원은 향후 모집할 20~30개 회원사들의 갹출로 충당한다. 각 회원사는 대략 20억~30억 원씩을 갹출해야 한다.
문제는 ‘10억 원도 채 출자하지 않은 부산시가 어떻게 향후 2~3배의 출자금을 낼 회원사를 대상으로 지배력을 가질 수 있느냐’다.
부산시 관계자는 “문제는 없다”고 답하지만, 정작 뾰족한 방안은 없어 보인다. 실제로 부산시는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해 이번 제안요청서를 통해 응모 업체에 숙제를 냈다. ‘(부산시가)민간의 740억 원 투자금을 대상으로 어떻게 지배력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전략을 기재하라’는 내용이 요청서에 담겼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응모 업체 평가기준이 된다. 결국 부산시는 시가 풀어야 할 숙제를 몇 개월 동안 해결하지 못한 채 뒤늦게 이를 업체들에 미룬 셈이다.
이에 대해 부산시 관계자는 “일정이 다소 지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철저하게 검토하며 한 단계씩 진행되고 있다”며 “회원사 권리 문제 등 아직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고 있는 것들은 추후 지주회사 운용기관이 선정되면 함께 의논해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업계에선 이런 부산시의 해명에 대해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고도 회원사 권리 문제조차 명확하게 규정하지 못한 채 ‘나중에 하겠다’고 한다”며 “겨우 지주회사 운용기관을 선정하겠다고 결정하는 데 무려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려야 하느냐”며 오히려 부산시를 꼬집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금융당국도 반대
더 큰 문제는 바로 금융당국의 반대다. 업계에서는 부산시가 거래소 운영방식을 바꾸면서 금융당국의 부정적 시각이 커지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 추진하는 ‘가상자산시장의 한국거래소’와 같은 형태라면 국내 가상자산시장을 지배하는 유일무이한 거래소가 되는 것”이라며 “실현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금융당국이 그런 큰 권한을 부산시에 오롯이 넘겨줄 리 만무하다”고 말했다.
부산시가 회원제 방식의 거래소를 추진하면서 해외 거래소를 회원사로 끌어들인 것 역시 금융당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금융위원회와 금융위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가 작성한 ‘부산 디지털자산거래소 설립 지원요청 관련 검토 안건’에 따르면, 금융위 등은 해외 거래소와 협업하는 부산 거래소의 추진 방식에 대해 △사법리스크 △투자자분쟁 △자금세탁위험 △국내산업위축 △국정 과제 불일치 등을 조목조목 언급하며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이러한 금융위의 문건 내용이 알려지자, 블록체인 업계는 “올 것이 왔다”는 의견과 함께 “그동안 부산시는 뭘 했느냐”는 질문을 동시에 던졌다. 사업 방향을 변경·추진하면서 금융당국과는 아무런 조율이 하지 않았다는 것. 부산 디지털자산거래소 참여를 희망해 온 한 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더딘 일정에 대해 부산시는 ‘꼼꼼하게 계획하느라’ ‘금융당국과의 조율 때문에’ 등 여러 변명을 댔지만 정작 사업계획은 여전히 엉성하고, 금융당국과는 전혀 교감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