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결국 모든 건 윤 대통령의 책임
전창훈 서울정치팀장
문재인 정부 초기 청와대를 출입했다. 대통령의 한 마디, 손짓 하나가 뉴스가 됐다. 주요국 정상과의 첫 통화, 1호 지시, 첫 현장 방문 등 하나하나의 통치 행위가 어쩌면 실체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아 각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참모들과 커피 산책, 시민들과 셀카 찍는 모습은 탈권위와 소통의 상징처럼 회자됐다.
같은 ‘허니문’ 시기를 지나는 윤석열 정부의 현재는 많이 다르다. 기자들과의 출근길 문답이라는 어려운 결단을 내렸지만,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킨 기억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최근 잦아진 민생 현장 방문에 대한 시중의 반응도 무덤덤한 편이다. 지지율 상승의 ‘치트키’ 같던 해외 순방은 ‘지뢰밭’이 됐다. 이러니 정권 초반 대통령실과 정부 전반에 도는 ‘한번 해보자’는 활력,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흥분과 기대감도 차이가 확연하다. ‘국정농단 직후 정권’과 ‘0.73%차 정권’이라는 태생적 차이가 이 격차를 다 설명해주진 못할 것 같다.
지지율 추락 속 악재 반복되는 與
‘비속어’ 대응서 드러난 소통 장애
프레임 뒤집기는 낡은 정치 기술
결국 대통령의 책임, 변화 주도해야
많은 이가 대통령 지지율이 30%대 초반까지 추락한 뒤 좀체 반등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이 정부의 ‘실력 부족’을 거론한다. 기자 역시 전임 정부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미숙함을 여러 차례 느꼈다. ‘공감력 제로’의 수해 참사 현장 방문 사진이나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정책의 혼선 등은 좀 어이가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진보 정권보다 더 오랜 집권 경험이 있는데, 단순히 실력 때문에 이런 실수를 반복한다는 게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가진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든 어떤 내부의 제약 요인이 있는 건 아닐까.
대통령실의 ‘비속어 논란’ 대응에서 의문의 실타래가 조금 풀렸다. 윤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 행사장에서 문제의 발언을 한 이후 대통령실의 해명이 나오기까지 16시간이 걸렸다. 순방 일정이 초 단위로 돌아간다고 해도 너무 늑장이다.
이 정도 사안이면 대통령에게 즉시 정확한 발언 내용을 물어보고, 대통령이 “그런 말이 아니다, 정정하라” 혹은 “사적인 대화였지만 부적절했다. 유감 표명을 하라”고 지시했다면 국내 언론은 물론, 외신까지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당연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발언 당사자인 윤 대통령과 참모진이 해당 영상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대응 방안을 정리했다면 굳이 전문가의 해석을 받느라 몇 시간을 허비할 이유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릴레이 해명’ 해프닝도 없었을 게다.
이런 장면들은 결국 대통령실 내부의 소통 장애를 드러낸다. 당사자인 윤 대통령이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지도, 그렇다고 참모진에게 이 상황을 주도적으로 수습할 권한도 주지 않아 생기는 혼선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대선 이후 대통령에게 고언할 사람이 없다는 얘기는 꾸준히 나왔다. 최근 만난 대통령의 오랜 지인은 “(대통령실)안에 있는 사람과 통화해 보면 ‘외부에서 쓴소리를 왜 못 하냐고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 용산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대선 기간 캠프 인사들에게 전해 들은 윤 대통령은 장점이 참 많았다. 소탈하고, 진솔하고, 사람 만나길 즐기는 인간적인 매력. 여기에 보수, 진보 양 정권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한 강직함,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가장 좋아한 보수 대통령이라면 이전과 달리 좌우 균형을 도모하면서 통합의 정치에 힘을 쏟지 않겠나 하는 기대감도 적지 않았다. 5월 취임사에서 이례적으로 ‘반지성주의’를 언급하며 진영 대립으로 인한 우리 사회의 분열상을 우려했던 윤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그런 장점과 문제의식이 지금 국정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확인하기는 참 어렵다. 적어도 명백해 보이는 잘못에는 깔끔하게 사과하기만 해도 전 정부와는 참 많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반대 진영의 공격에는 눈 하나 깜짝 안 한다던 전임 대통령은 진짜 그렇게 국정 운영을 했고, 나라를 심리적 내전 상태로 내몰았다. 전임 정부의 실정을 집요하게 파헤치면서도 내부의 잘못에는 적대적 언론 환경을 탓하며, 프레임을 짜서 진영의 힘으로 상식과 맞서려 했다. 지금 윤 대통령의 통치는 그와 다르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당장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려는 조급함에 실패한 낡은 정치 기술을 답습하려는 것 아닌가?
지지율 급락 이후 수많은 고언들이 언론과 외부의 입을 통해 윤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비판을 위한 비판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윤석열 정부가 좀 더 나은 정부가 되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s stop here).” 미국 33대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집무실에 놓아둔 글귀다. 이 말처럼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이 바뀔 생각이 없으면 백 가지 고언도 그저 소음일 뿐이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