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86) 윤형근 ‘Burnt Umber & Ultramarine 8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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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근(1928~2007)은 충청북도 청주 태생으로 ‘한국 단색화’의 거장이다. 윤형근은 단색화 작가들 중에서도 한국적인 정신과 색의 탐구를 담아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색(Ultramarin)과 다색(Umber) 안료를 섞어 만든 오묘한 검정빛의 색면과 여백의 관계가 주는 극도의 단순함. 윤형근의 작품에서는 간결하면서도 소박하고 넉넉한 분위기가 난다.

윤형근은 1960년대 서구 추상화와 당시 장인인 김환기의 ‘정신성’ 주제 의식과 조형적 접근방식에서 영향을 받았다. 동시에 작가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유신체제 등 한국사의 굵직한 정치·사회 변혁기 체제적 모순의 전면에 나서 저항하고 발언함으로써 총 3번의 복역과 1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윤형근은 1973년 반공법 위반 혐의로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 복역 후 요시찰 인물로 등록된다. 작가는 10여 년간 작업에 몰두하면서 제작한 작품 ‘청다색’(1975)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후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Burnt Umber & Ultramarine’ 시리즈가 이어진다.

초기 청다색 작품은 이러한 아픔과 울분 등의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구도적 수양자’라는 예술가적 태도에 기인한 것이다. 또 서구 색면파와의 관계에서보다 동양의 서예나 수묵화에서 나타나는 방법론적 문맥과 연관이 높다. 1977년 윤형근의 작가 노트에 기록된 ‘내 그림 명제를 ‘천지문’이라 해 본다. BLUE는 하늘이요, UMBER는 땅의 빛깔이다. 그래서 천지(天地)라 했고 구도는 문(門)이다’라는 글을 통해 윤형근의 동아시아적 정신성과 미학적 근원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으로 윤형근은 생전에 “내 그림은 추사 김정희의 쓰기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기운생동이 잘 드러난 추사의 서예에 후대 수많은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경도되었듯, 작가도 특히 선과 여백의 관계에서 문자(정신)를 다루는 추사의 공간 운용에 매혹되었던 듯하다.

작품 ‘Burnt Umber & Ultramarine 87-91’은 청다색의 색면기둥과 여백의 구조적 관계를 대담한 형태로 탐구하며 물감의 번짐과 수축 등 형식적 원숙미가 이루어진 시기의 작품이다. 화면 안의 물감의 번짐과 수축의 미묘한 변화는 완결된 구성이라기보다 진행자체의 의미를 되새기는 발생적인 성향으로 평가된다. 작품의 첫인상은 무심(無心)하면서도 투박한 자연의 느낌으로 다가와 인간이 지닌 내면적인 울림을 끌어내고, 종국에는 경건함과 명상으로 인도한다. 김지호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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