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성덕보다 힘겨운 탈덕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영화평론가

다큐멘터리 ‘성덕’. BIFF 제공 다큐멘터리 ‘성덕’. BIFF 제공

3년 전 유명 아이돌들의 성범죄 사건이 있었다. 사건의 가해자들은 거대한 덕후를 둔 스타들이었기에 그 충격은 상당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된 다큐 ‘성덕’은 바로 그 범죄에 연루된 스타들의 팬, 이른바 ‘성덕’(성공한 덕후)이 주인공이다. ‘성덕’은 스타를 좋아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이야기를 다룬다. 스타의 성공이 마치 자신의 것인 듯 기뻐하고, 굿즈를 모으고, 스타의 하루를 공유하는 것이 즐거움인 팬들. 그런데 자신의 청춘을 바쳐 ‘덕질’을 했던 팬들은 스타의 범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다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다큐 ‘성덕’, 감독 자전적 이야기

좋아했던 가수, 성범죄 나락으로

혼란·죄책감 시달리는 팬들 위로

피해자 마음 아울렀다면 아쉬움도


다큐는 앞서 언급한 스타의 성덕이었던 오세연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다. 감독 또한 10대 시절 그 가수의 열렬한 팬이었고, 그 가수를 보기 위해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갔으며, 가수의 눈에 띄기 위해 팬 사인회 때마다 한복을 입었다. 어느 날은 그 가수의 이름이 적힌 명찰을 달고 방송에 출연하는 등 감독은 성덕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결국 그 가수도 기억하는 성덕이 되었다. 하지만 좋아했던 가수가 성범죄라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서 감독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느낀다.

감독의 입덕과 성덕 그리고 탈덕으로 이어지는 자기고백 이후,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성덕들과 만나면서 이야기는 확장된다. 범죄 사건의 가해자인 스타들의 팬들은 여전히 혼란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치 자신들이 가해자인 듯 숨죽여야 했고, 또 그 스타를 응원하고 좋아했던 시간을 부정하는 동시에 그런 스타를 좋아했던 자신을 질책했다. 이때 감독은 성덕들이 느끼는 복잡한 내면을 들여다보고 성덕을 위한 시간을 마련한다.

팬들은 어렵게 모은 굿즈를 진열하고, 국화꽃과 초를 놓고 ‘굿즈 장례식’을 거행한다. 좋아했던 시간 자체를 부정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진정한 이별식을 치른다. 그런데 다큐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덕질이 자신들의 세대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알린다. 고인이 된 배우 조민기의 팬이었던 감독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자인 태극기 부대까지 세대와 성별을 넘어선 덕질 문화를 살핀다.

그간 팬들의 덕질을 한때의 감정으로 평가 절하해온 기성세대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K팝 아이돌 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이루어 낸 핵심 동력에는 팬심이 자리한다. 팬들은 스타의 성장을 바라보며, 스타의 인기를 자신의 것인 양 기뻐했다. 여기서 감독은 자신이 좋아했던 스타의 추락에 괴로워하고 성덕인 자신을 원망했을지언정 팬 문화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좋은 영향을 받고 자기 삶을 윤택하게 꾸려나간다면 ‘덕질’은 여전히 긍정적”임을 주장한다. 감독에겐 실패한 덕질이었지만 그 마음만큼은 실패한 것이 아님을, 상처 입은 팬들을 만나며 서로를 위로하는 과정을 다큐는 그리는 것이다.

이번 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성덕’은 여러모로 주목 받는 작품이다. 다큐가 사회적 이슈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다룬다고 생각했다면 ‘성덕’은 가볍고 유쾌한 방식으로 민감한 사안에 접근하고 있으며 대중성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팬과 전직 스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범죄자가 된 스타의 ‘팬’들을 위로하는 데 그 목적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지점이 존재한다. 이 다큐는 팬의 마음, 팬과 스타의 관계에 몰두한다고, 범죄의 피해자들을 미처 고려하지 못한다. 물론 팬들의 마음은 진실 되고 위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 범죄로 여전히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피해자들의 마음까지 아우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