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눈] 고교 학점제에 대하여
이창용 예문여고 교사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가장 친한 친구는 고등학교에서 만난 친구이고 가장 기억에 남는 학창 시절은 고등학교 시절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모교를 방문한다면 그것 역시 고등학교를 방문하고 싶은 사람이 가장 많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 인생에서 고등학교는 단순히 대학을 가기 위한 관문만은 아니다. 고등학교에서 우리는 가장 소중한 친구를 얻고 가장 소중한 추억을 쌓아 학창 시절에 쌓은 그 소중한 재산으로 힘든 사회생활에서 위로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들 고교 학점제의 반대 이유로 학생들의 잘못된 과목 선택, 학급의 붕괴, 교사 수급의 문제, 현행 입시제도와의 괴리 등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고교 학점제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학생들의 친구, 추억, 심지어 그들의 모교를 뺏어가는 것이다.
일부 학교에서 미리 시행하고 있는 ‘고교 학점제’는 자신이 선택한 과목을 찾아가서 수업을 듣는다. 그래서 매 시간 한 시간도 빠지지 않고 이동을 한다. 이미 학급 친구는 없어진지 오래돼 보인다. 아침에 조례와 저녁에 종례를 잠시 하는 것이 학급 친구를 만나는 유일한 시간이다.
대학처럼 각 반에서 온 동일 선택과목을 수강한 학생들이 자리를 잡는다. 선택과목 선생님이 출석을 부른다. 그러나 자신의 학급에 결석한 친구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래서 결석한 친구를 찾기 위해 늘 출석을 불러야 한다. 자기 반의 친구가 결석을 했는지 출석을 했는지 모르는 고등학교 시절, 과연 친구가 있고 추억이 있고 모교가 있을까?
그러면 학생들의 자유로운 과목 선택으로 좋아진 것이 있을까? 심지어 자신의 선택과목이 무엇인지 몰라 학기초에 학생들의 선택과목을 알려주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친구 따라 그것도 아니면 그냥 대학 가기 쉬울 것같아 선택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선택을 위한 선택일 뿐이다.
코로나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그 중 하나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학교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고교 학점제가 그 현상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렇게 고교 학점제가 10년만 더 시행된다면 우리의 자녀들은 친구와 추억 하나 없는 속이 빈 허수아비 같은 존재가 되고 말 것이며 그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게 될 것이다.
우리의 DNA는 농경사회를 바탕으로 한 협동의 DNA이지 서양의 수렵이나 채집의 DNA와는 엄연히 다르다. 우리의 경쟁력은 ‘우리’ 속에 있으며 마음 맞는 사람끼리 뭉치면 못하는 것이 없는 민족이다. 각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서양의 민족과는 분명 다르다. 우리의 교육은 이런 민족적 특성을 이끌어내야 한다. 비록 공부를 못해도 함께할 친구가 있고 비록 공부를 못해도 친구들과의 추억이 있다면 그는 분명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선택의 자유라는 허울뿐인 이유로 자녀들의 삶에서 소중한 것을 빼앗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