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리원전 방폐장화, 주민 의견 안 듣고 강행하나
정부·한수원, 핵폐기물 저장시설 계획
지역 동의 없는 추진, 결코 용납 못 해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부산 고리원자력발전소 부지 안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의 지상 저장시설을 2030년까지 건립할 계획인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부산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이 올해 4월 부산시청 앞에서 고리원전 2호기 수명 연장과 영구 핵폐기장 추진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부산 고리원자력발전소 부지 안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의 지상 저장시설을 2030년까지 건립할 계획인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한수원은 이미 정부에 이를 보고했고, 다음 달 말 이사회에 상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하는 부산시민들은 뒤통수를 맞은 듯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그동안 입이 닳도록 고리원전 핵폐기물 포화에 따른 영구 처분장(방폐장)의 절박함을 호소해 왔는데, 해법이 결국 고리원전 내 저장이라면 어떻게 수긍하겠나. 더군다나 지역의 의견도 묻지 않았다. 정부가 아무리 ‘한시 시설’이라고 우겨도 시민들에겐 꼼수로밖에 안 들린다.
한수원의 지상 저장시설은 고리 2·3·4호기와 신고리 1·2호기 가동 과정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을 영구 방폐장이 마련될 때까지 보관한다. 현재 원전 내부 수조에 있는 핵폐기물은 2031년이면 더는 저장 공간이 없기 때문에 2030년부터 이 시설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를 마련하지 못하면 원전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고, 한수원은 벌써 예산 5700억 원도 책정해 놓았다고 한다. 언뜻 보면 그 필요성에 수긍이 갈 듯도 하지만, 이는 정부와 한수원이 자신의 직무 유기를 실토하는 말과 다름없다. 핵폐기물 포화에 대비한 영구 방폐장 마련은 수십 년간 부산시민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애걸하다시피 호소한 사항이다.
부산시민들은 정부와 한수원의 이 같은 계획을 사실상 고리원전을 영구 방폐장화하는 일이라고 여긴다. 정부는 영구 처분시설을 마련해 운영하기 전까지 활용할 한시적 시설이라고 하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준위 방폐장은 1978년 고리원전 첫 가동 이후 40년이 넘도록 의미 있는 진전이 전혀 없는 난제다. 정부는 작년 말 이에 대한 기본계획을 마련하고, 2060년까지 고준위 방폐장을 짓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치적 민감성 때문에 아직 공론화 입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리원전에 새 저장시설을 짓겠다는 발상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고리원전의 영구 방폐장화를 강제하는 것과 같다.
여기에 부산시민들이 극력 반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목숨이 달린 문제다. 생존이 걸린 중차대한 사안인데도 정부와 한수원은 지역민에게 한마디 의견조차 묻지 않았다. 지금도 시민들은 원전 이야기만 나오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게다가 기후변화로 초강력 태풍의 내습도 잦아지고 있다. 올해도 해안가에 위치한 신고리 1호기가 태풍에 멈춰 섰다. 여기에 더해 이제 지상에 핵폐기물까지 쌓아 둔다면 그 위험성은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렵다. 부산시민의 이런 불안감을 멀리 수도권에 안주한 정부 관계자는 전혀 헤아리지 않는다. 지금까지 줄곧 이런 식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결코 그럴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