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축제와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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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연극 ‘예더만’ 포스터. 부산일보DB 연극 ‘예더만’ 포스터. 부산일보DB

알프스 자락의 잘츠부르크는 풍광이 아름다운 도시다. 중세 대주교가 통치한 도시국가로 성당과 수도원이 많다. 유서 깊은 건축물들은 도시의 경관을 드높인다.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양식이 조화를 이룬다. 극작가 후고 폰 호프만스탈이 이 도시를 “바로크 왕후의 기품과 순박한 농민의 중간”이라 예찬한 까닭을 알겠다. 이탈리아와 독일문화가 만나 세련된 문화를 꽃피워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잘츠부르크축제는 이 도시 최고의 문화상품이다. 10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한다. 대축제극장과 모차르트하우스, 펠젠라이트슐레, 성당과 궁전, 거리에서 다채로운 공연이 열린다. 도시 전체가 축제의 장이다. 모차르트를 내세운 음악축제로 유명하지만, 1920년 대성당 광장에서 상연한 연극 ‘예더만’이 기원이다. 호프만스탈이 중세 도덕극 ‘에브리맨’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폐허와 상처를 예술로 치유하고 싶었던 것일까. 연극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는 예술이 부르주아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실천했다. 개방성과 평등성에 바탕을 둔 문화민주주의적 기획이다. 이 축제는 매년 ‘예더만’으로 첫 장을 연다. 지금도 광장에서 상연하고 입장료가 저렴하다. 도시의 역사적 내력과 축제의 전통, 축제기획자의 본뜻을 계승하려는 의지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축제다.

축제의 기원은 종교의식이나 농경사회의 의례와 관련이 깊다. 수확이나 전쟁의 승리처럼 의미 있는 시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오늘날 축제의 함의는 사뭇 다르다. 문화산업이나 관광자원으로 곧잘 인식한다. 그런 까닭에 정치나 경제논리로 축제의 명운이 결정되기도 한다. 평화나 인권을 표방한 축제가 느닷없이 폐지되는가 하면, 빈 수레 같은 축제를 더 요란하게 치르기도 한다. 부산에서도 사시사철 축제가 펼쳐진다. 영화제, 음악제, 연극제, 비엔날레, 록페스티벌, 불꽃축제, 바다축제 등 실로 다채롭고 수도 적지 않다. 축제의 도시라 할 만하다. 축제는 과연 부산을 어떻게 담아내며, 어떤 도시로 만들고 있을까?

축제에는 역사성, 지역성, 공동체성, 예술성, 문화의 다양성이 함께 한다. 세계화시대 지역문화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글로컬리제이션의 한마당이다. 더 이상 국가와 지자체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잘츠부르크축제의 친구 협회’는 1961년 결성되었다. 60여 개 국가의 애호가 6,600명이 축제를 지원하고 후원한다. 축제의 가치와 방향성을 논의하기도 한다. 축제는 단순하게 소비되어서는 곤란하다. 축제가 도시를 만들고 도시가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다. 이 가을, 고단한 일상에서 벗어나 축제의 바다에 뛰어들어볼 일이다. 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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