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침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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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아 소설가

외출을 하려고 현관문을 열었다가 문득 움츠러들 때가 있다. 복도식 아파트인 우리 집은 현관문을 열면 아홉 가구의 공동 통로인 긴 복도가 있고 시멘트로 된 난간이 정면에 보이는데, 그곳에서 앉아 쉬던 까마귀가 고개를 돌려 나를 쏘아보기 때문이다. 정말이다. 나는 녀석이 나를 쏘아본다고 느낀다. 그래도 자신보다 커다란 생물체인데 나라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없는 것 같다. 그저 자신의 고요한 휴식을 방해한 인기척이 좀 불쾌하다는 듯 그 새까맣고 커다란 눈으로 나를 응시한다. 감히 어디, 날개도 없는 인간 따위가, 라고 가볍게 무시하는 것처럼.

처음에는 까마귀가 난간에서 휴식만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괜찮았다. 조류에 대한 공포가 있기 때문에 그 옆을 지나오기가 조금 무섭기는 했지만, 눈을 내리깔고 공손하게 손을 모은 채 지나가면 녀석에게 공격받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까마귀는 난간과 복도 바닥에 배설을 하기 시작했다. 몸집이 커서 그런지 배설물도 양이 많았다. 나는 속으로 궁시렁거리며 녀석의 배설물을 치웠다. 아파트 건물을 전체적으로 청소해주시는 분이 계시긴 하지만 매일 모든 층을 관리할 수 있는 건 아니라서, 그냥 내 눈에 배설물이 보이면 딱딱하게 굳기 전에 바로 닦아버렸다. 그런데 내 청소가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까마귀가 배설하는 빈도는 점점 잦아졌고 신기하게도 항상 같은 자리에만 볼일을 봤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까마귀의 화장실 청소 담당자가 되어버렸다.

사실 까마귀는 사람들에게 그리 환영받는 동물이 아니다. 몸체가 크고 검어 음산한 느낌을 주는 데다 울음소리도 어쩐지 불길하고 시체를 쪼아 먹는다는 이미지도 겹쳐 있으니 말이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도심지 한복판에서 보행자들을 공격하는 까마귀들이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오니 더욱 두려움과 기피의 대상이 된 것 같다. 하지만 녀석들이 왜 아파트 단지 안까지 들어와 난간에서 머물고 건물에다 배설을 하고 쓰레기통을 뒤지는지, 왜 사람들을 공격하는지,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의 주거지에 그들이 침입한 걸까, 우리가 그들의 서식지에 침입해 살고 있는 걸까.

우리 인간이 산을 깎고 바다를 매립해 지은 아파트들은 마치 본래 그곳이 제자리였던 듯 위풍당당하게 서 있지만 사실 그 공간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그러니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들이 도심에 출몰해 주민들과 마찰을 빚는 일에 대해 우리가 화를 낼 일은 아닌 것이다. 까마귀뿐만이 아니다. 숲이나 하천에 살아야 할 새들이 도심의 전봇대나 아파트 단지 안에 둥지를 튼다. 어느 지역에서는 몸집이 큰 새인 왜가리가 도심지 큰길가의 가로수에 둥지를 틀어 배설물 관련 민원이 쏟아진다고 한다. 또 어느 곳에서는 도심 공원에서 멸종위기종인 수리부엉이가 발견되었다고도 하고, 집 주변에서 야생 너구리를 보았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따라 강가로 이동하던 오리들이 도로에서 로드킬 당하거나, 비행하던 새들이 투명한 방음벽에 부딪쳐 죽는 경우도 허다하다.

야생동물들의 입장에서는 참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을 것 같다. 빨리 달리지도 못하고 헤엄도 잘 못 치고 날지도 못하는 인간 따위가 그들의 삶의 터전을 마음대로 망가뜨려 놓고, 보기 흉한 시멘트 건물을 여기저기 세워둔 채 주인 행세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야생동물들을 도심에서 어떻게 쫓아낼까 궁리나 하면서.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참회하는 마음으로, 이제는 속으로도 궁시렁거리지 않고 까마귀가 지정해둔 난간 화장실을 성심성의껏 닦아보아야겠다. “까마귀님, 마음껏 싸고 가세요. 청소는 제가 할게요.” 침입자는 그들이 아니라 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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