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처럼 번지는 ‘히잡 시위’, 이란 이슬람 정권 균열 부르나
대통령 유감 표명에도 반정부시위 확산
세계 각국 젊은 층·축구선수까지 가세
시위자 최소 60명 사망, 2000명 체포
이란정부 과잉진압 비난 목소리 커져
미국, 무인항공기 격추 등 군사개입 나서
지난 27일 미국 뉴욕에서 이란 반정부 시위대의 한 여성이 마흐사 아미니(22)의 사망 사건에 항의하며 삭발하고 있다. 아미니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란의 지도 순찰대에 체포됐다가 지난 16일 의문사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금돼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22)의 사건이 이란을 뒤흔드는 민주화 시위로 번지고 있다.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했지만, 격화되는 반정부 시위를 멈추기엔 역부족이다. 축구선수 등 유명인과 세계 각국의 젊은층이 시위에 가세하며 이란의 이슬람 정권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란 정부의 과잉 진압에 미국과 서방의 직접적인 제재 가능성도 나온다.
라이시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에서 “아미니의 죽음은 우리 모두를 슬프게 했다”면서 “사건을 보고받고 유족에게 전화를 걸어 애도를 표했다”고 밝혔다. 아미니는 지난 13일 테헤란에서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도 순찰대에 체포돼 조사받던 중 갑자기 쓰러졌다. 병원에 옮겨졌으나 지난 16일 결국 숨졌다. 라이시 대통령은 고문 의혹 등과 관련해 진상 규명을 약속했다.
라이시 대통령의 유감 표명에도 반정부 시위는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서울을 비롯해 독일 베를린, 미국 뉴욕 등 세계 80여 개 도시에서 13일째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경찰과 시위대 충돌로 인한 사망자는 최소 60명이며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된 사람도 2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디언에 따르면 28일 이란과 세네갈의 친선 축구경기에서는 이란 국가대표팀이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자국 국기와 배지를 숨겼다. 유명 국가대표 선수인 사르다르 아즈문은 SNS에 “최악의 경우 대표팀에서 해고되겠지만 문제없다. 이란 여성들의 머리를 위해 희생하겠다”고 말했다.
미 중동 싱크탱크연구소 MEI는 이번 시위를 두고 “젊은 여성과 10대 소녀의 전례 없는 용기가 주요 특징 중 하나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또 외신들은 SNS 등에서 주요 국가의 자유분방한 여성의 모습을 보고 자란 젊은층이 어느 때보다도 대담하게 거리로 나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간 이 같은 문제를 외면하던 이란의 지도층과 남성들까지 시위에 동참한 것도 주요 특징으로 평가된다.
시위가 격화하면서 이란 정부의 과잉 진압에 대한 비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28일 이번 시위와 연관이 있다며 이라크 쿠르드 반군 거점을 공격했다. 국경을 넘어 쿠르드 자치구역까지 공격한 셈이다. 이란군의 폭격에 13명이 숨지고 58명이 다쳤다. 임신부 등 사상자 대부분이 민간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로켓포, 무인 폭격기의 무차별적인 공습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면서 “주재 이란 대사에게 국경 너머 폭격에 대해 강력히 항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CNN에 따르면 미국도 이날 F-15 전투기를 출격시키며 대응했다.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 에르빌의 미군기지로 향하던 이란 무인항공기(드론)를 격추했다. 외신들은 미국과 서방이 시위대 진압을 위한 이란 정부의 군사 작전을 중대 사건으로 보고 추가 대응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