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이 ××가 안타까운 이유
김희돈 편집부장
“투표권 가진 회원국들이 굉장히 많다. 한 국가 한 국가 일대일로 설득을 해서 지지를 끌어내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중략)제가 나토에 가서도 양자회담을 하면서 지지를 호소할 때 귀국의 상품을 전 세계에 보여 주는 데 있어서 대한민국만큼 확실하게 광고해 줄 수 있는 인프라를 가진 경쟁국이 없다(고 말했다). 열심히 하면 가능하다고 본다.”
8월 17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 전략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한 답변이다. 오일 머니를 앞세운 사우디 리야드가 유리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개최 도시 결정이 1년 이상 남았으니 충분히 역전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답변이었다. 〈부산일보〉는 다음 날 1면에 ‘“부산, 경쟁력 월등”…윤 대통령, 엑스포 유치 ‘자신감’’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전
국가 명운 걸겠다는 대통령실
하반기 역량 총결집 의지 밝혀
첫 행보였던 유엔총회 순방길
예상 밖 논란에 기회 못 살려
11월 또 기회… 성과 만들어야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 추진은 이미 2019년 5월 국무회의를 통해 확정된 국가사업이다. 전임 문재인 정부 때 일이지만, 윤석열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 “국가의 명운을 걸겠다”며 힘을 실었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1%포인트 미만의 접전을 벌인 3·9 대선에서 부산 유권자들이 윤 후보에게 58.25%라는 높은 득표율을 안긴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개별 사업인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를 위한 전담 태스크포스를 설치하기도 했다. 현재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은 ‘2030부산세계박람회유치위원회’로 격상돼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민관이 하나가 돼 국가사업의 성공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는 상황이다.
이미 대기업 총수를 비롯한 재계의 폭넓은 지원과 정부 관련 부처 실무진의 다각적인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문화예술계도 마찬가지다. 당장 이달 15일 부산 콘서트를 열 계획인 방탄소년단(BTS)이 그렇고, '오징어 게임'으로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글로벌 K콘텐츠 붐을 주도하는 이정재가 그렇다. 이들의 헌신이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들의 우호 여론을 조성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호 여론을 ‘부산 지지’로 확정짓는 결정적 한 방은 결국 각 회원국 최고위급 인사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점 역시 자명하다. 대통령실도 윤 대통령의 첫 다자간 외교 무대였던 나토정상회의 이후 유치전 일정에 대해 하반기를 주목한다고 밝혀 왔다. 김윤일 미래정책비서관은 8월 〈부산일보〉 인터뷰에서 “올해 하반기를 유치 당락을 가를 시점으로 판단하고 정부와 민간의 역량을 총결집한다는 게 대통령실 구상”이라고 강조했다.
9월, 윤 대통령은 ‘하반기 역량 총결집 구상’의 첫 일정으로 유엔총회에 참석했다. 미국 뉴욕을 거쳐 캐나다까지 이어지는 순방 계획이었는데, 영국 엘리자베스 2세 국장까지 참석하면서 일정이 늘었다. 우리로서는 불리한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추가시간을 얻은 셈이었다.
유엔총회가 끝나고 10월이다. 결과는 이미 알고 있는 그대로다. 여전히 부산을 공개 지지한다는 BIE 회원국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반면 실세 빈 살만 왕세자가 직접 뛰는 사우디 리야드는 57개국이 회원인 이슬람협력기구(OIC)를 비롯해 프랑스, 인도네시아 등 지지 국가를 늘려 가고 있다. 조문 실패·48초 스탠딩 환담·굴욕 외교 논란도 모자라 ‘뉴 욕’이라는 비아냥까지 들리는 5박 7일 일정에 부산월드엑스포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으리라.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지만 아쉬움이 큰 결과다. 다행인 것은 아직 기회가 있다는 점이다. 다음 달에는 아세안정상회의, G20정상회의, APEC정상회의 등 또 다른 다자간 정상 외교전이 아시아 국가에서 줄줄이 예정돼 있다. 지금부터 다시 구두끈을 단단히 묶어 가시적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사족 하나. 2019년 나온 〈사람을 이끄는 대화의 기술 말의 힘〉이라는 책에 다음 구절이 나온다. ‘의도하든, 의도치 않았든 우리 삶에 불편함을 가져오는 위기상황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럴 때 진심을 담아낸 말을 제대로 전할 수 있다면 이런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것인지, 그 상황에서 꼭 필요로 하는 말을 할 것인지에 대한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
‘위기에서 필요한 말’이라는 항목의 결론이다. 저자는 잘못된 예로 음주뺑소니 사고로 물의를 일으킨 가수의 변명(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을 소개하며 ‘반성 없는 궤변이란 싸늘한 반응이 줄을 이었다’고 했다. 출간 당시 교수라고 밝혔던 저자는 요즘 정치인으로 TV에 등장해 ‘자막 조작’을 설파하고 있다. 발언 당사자의 사과조차 없는데 말이다. 이 ××가 안타까운 또 다른 이유다.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