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지혜의 바다 도서관’ 백지화… 전 시장 업적 지우기?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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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 경남교육감 역점 사업
작년 시·교육청 협약… 사업 구체화

6·1 지선서 시장 바뀌자 급제동
대안 냈지만 도 약속 예산 지원 무산
지역사회 “정치 셈법 떠나 고려해야”

2018년 4월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있는 옛 구암중학교 체육관을 증축해서 만든 ‘창원 지혜의 바다 도서관’. 부산일보DB 2018년 4월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있는 옛 구암중학교 체육관을 증축해서 만든 ‘창원 지혜의 바다 도서관’. 부산일보DB

경남 거제시가 민선 7기 주요 시책으로 추진한 ‘지혜의 바다 도서관 설립’을 백지화했다. 현 거제시체육관을 고쳐 다목적 도서관으로 꾸미기로 했는데, 정작 새 체육관을 옮겨 짓기가 여의찮다는 이유다. 한편에선 ‘전임자 업적 지우기’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혜의 바다 도서관은 박종훈 경남교육감 역점 사업으로 도서, 문화. 예술이 공존하는 새로운 개념의 도서관이다. 남녀노소 전 연령대가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신 복합 독서문화 공간을 목표로 한다.

거제시는 민선 7기 시장 공약인 ‘아이키우기 좋은 도시’의 하나로 이 도서관을 선정, 작년 9월 도 교육청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사업을 구체화했다. 100억 원 규모 사업비는 도에서 지원받기로 했다. 계획대로라면 2018년 4월 옛 구암중학교 체육관을 증축해서 만든 ‘마산 지혜의 바다 도서관’과 2019년 12월 김해 주촌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김해 지혜의 바다 도서관’에 이어 도내 3번째로, 규모면에서 최대다.

이를 토대로 지난 4월엔 지역 기관 단체, 학부모 등 150여 명을 대상으로 소통간담회를 열어 도서관 설립 추진 배경과 진행 상황 등을 설명하고 현장 의견도 수렴했다. 당시 변광용(더불어민주당) 시장은 “책을 읽고 공부하는 제한적 독서 공간에서 한 단계 더 진화된 새로운 개념의 도서관으로 시민의 평생교육을 책임지고, 전 세대가 어우러져 배움과 성장을 함께 누리는 혁신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 6·1지방선거에서 변 전 시장이 낙마하고 국민의힘 소속 단체장을 중심으로 새 집행부가 꾸려지면서 한 순간에 없던 일이 돼 버렸다.

시는 “‘다수의 문제’로 거제 지혜의 바다 도서관 건립은 무산됐다”고 밝혔다. 체육 시설은 집단화를 통해 활용도를 증대시켜야 하는데, 체육관만 다른 곳으로 이전할 때 분산되는 문제점이 생긴다는 것이다. 앞서 시는 대체 시설로 국제규격에 부합하는 3500석 이상 체육관을 신축하기로 했다. 하지만 마땅한 이전 장소가 없고 재원 확보 방안도 불분명하다. 게다가 실내 체육활동 장기간 중단에 따른 체육인 불만 그리고 인근에 있는 경남교육청 소유 거제도서관 폐쇄도 문제라는 게 거제시의 판단이다.

2021년 9월 14일 박종훈 교육감(오른쪽)과 변광용 전 거제시장이 지혜의 바다 도서관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부산일보DB 2021년 9월 14일 박종훈 교육감(오른쪽)과 변광용 전 거제시장이 지혜의 바다 도서관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부산일보DB

박종우 거제시장은 “기존 시설을 어디에 어떻게 건립할지를 먼저 결정한 후 도서관 활용 계획을 논의했어야 한다”면서 “MOU 체결에만 급급했다”고 짚었다. 대신 “상문동에 5000㎡ 규모의 지역 대표 시립도서관을 건립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경남도가 도서관 신축에는 관련 예산 지원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인 데다, 농지 용도 변경 절차도 까다로워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번 백지화 결정에 대해 무리한 흔적 지우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는 “문화복지는 정치적 셈법을 떠나 더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사안”이라고 꼬집었다.

거제시의회 내부에서도 반발 여론이 고조되면서 정쟁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제9대 시의회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8석 대 8석’으로 여야동수다.

이태열 의원은 “지혜의 바다 도서관은 제대로 된 시립도서관을 갖고 싶다는 지역민의 오랜 바람을 담은 시설”이라며 “매우 아쉬운, 근시안적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백지화 근거로 든 이유도 납득하기 어렵다. MOU에 앞서 체육회가 체육관 이전 건의서를 낼 만큼 체육인도 공감한 사업”이라며 “계속 추진되도록 의회 차원에서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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