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미국 기침에 아직도 한국은 감기 걸린다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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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진 서울경제팀장

미국 잇따른 금리인상에 한국 경제 휘청
환율·물가·무역수지 경제·외환위기 수준
경제 규모 커졌지만 아직도 美 영향권 내
한국 스스로 체력 길러야 글로벌 정글 생존

한때 한국 경제의 지나친 미국 의존도를 빗대 “미국이 기침만해도 한국은 감기 걸린다”는 말이 유행했다. 실제 그랬다. 그러다가 한국 경제 규모가 커지고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면서 “이젠 옛말”이라며 미국 경제의 영향력에서 한국 증시·경제가 독립했다고들 했다. 중국과의 교류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을 보면 여전히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함수관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잇따른 금리 인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공급망 차질 여파 등으로 한국 경제 곳곳에서 경고등이 켜진 때문이다.


지난주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주가는 폭락하면서 금융시장이 크게 휘청거렸다. 무역수지도 반년째 적자행진을 이어오면서 과거 경제위기가 반복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전문가나 블룸버그 등 일부 외신에선 ‘한국경제 위기론’까지 거론했다. 하지만 정부는 “경제위기 재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입장이다. 도대체 누구 말이 맞을까. 우리 국민들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우려에 “그럴 일 없다”는 정부 말을 믿었지만 결국 현실이 됐던 경험이 있다. 국민들사이에서 불안감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최근들어 국내 주요 그룹사들에선 연일 사장단 비상대책회의가 잇따르고 있고, 기존 투자 계획을 철회하거나 재검토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중소기업들도 레미콘업계와 요식업계 등 업종별로 원재료 가격 상승 등으로 “못해먹겠다”며 아우성이다. 금리 상승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빚투’(대출 받아 투자) 족들의 고통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실제 각종 경제 관련 주요 수치는 우리 실생활에 나쁜쪽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달러 초강세로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에서 고공행진 중이고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6·7월 연속으로 6%대로 급등했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대형 경제위기 때를 제외하고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선 건 처음이고, 물가 상승률이 두 달 연속 6%대 이상을 기록한 것이나 6개월째 무역적자도 외환위기 때이후 처음 맞는 일이다.

경제위기 재현 가능성이 낮다는 정부와 경제전문가들의 논리는 대략 이렇다. 한국의 외환보유고 등 대외건전성 지표가 IMF때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높고, 영국과 중국, 일본 등 주요국의 경제상황이 한국보다 더 나쁘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신용평가회사 피치는 “한국의 견조한 대외건전성은 현재의 불확실성에 대응해 나가기에 충분한 수준의 안전판을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지난 8월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364억 달러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204억 달러의 약 21배,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의 2012억 달러의 배 수준이다. 단기외채 비중도 40% 수준인데, 이는 외환위기때의 660%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75%보다 좋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참석차 필리핀 마닐라를 방문 중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엄청난 외환보유고가 있고 경상수지도 큰 틀에서 괜찮다”고 말했다. 외환보유고가 탄탄하고, 무역수지가 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6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지만 환율 상승에 서비스 수지 등이 포함된 경상수지 전체는 흑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국제금융시장 혼란은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것으로,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고 일본과 영국 등 주요국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거 IMF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국을 비롯한 일부 신흥국들의 문제였던 상황과 다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전문가들은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이 계속되면 그 여파로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원·달러 환율과 물가 상승이 계속 이뤄지면 우리나라의 실물경제가 지금보다 더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금리를 더 올릴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한국이 살아남으려면 적정한 수준의 가계부채와 충분한 외환보유액, 경상수지 흑자 등으로 ‘체력’을 스스로 길러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미국이 기침을 하지 말기를 기도하기보다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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