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소설 ‘절묘한 만남’ 재미·의미 다 잡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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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 첫 소설집 ‘원 그리기’

청년 문제에서 노년·죽음까지
과학적 개념으로 인생사 읽기
잘 읽히는 문장에 눈길 못 떼
“식상하지 않은 낯섦 봐 주길”

신호철 소설가는 “과학적 개념으로 살아있음을 탐구하고 싶었다”고 했다. 신호철 제공 신호철 소설가는 “과학적 개념으로 살아있음을 탐구하고 싶었다”고 했다. 신호철 제공

과학적 개념과 소설이 절묘하고 특이하게 만났다. 신호철(55) 소설가의 첫 소설집 〈원 그리기〉(문이당)는 단편 9편을 실었는데 첫째 특징은 과학적 개념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점이다. 그는 201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을 때 ‘대학 물리학과 졸업’이란 이력으로 눈에 띄었다. 현재는 김해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소설집의 맨 앞 작품 ‘관측 가능한 불두덩의 중력장’은 벗어날 수 없는 욕망의 중력을 그린 것이다. 과학적 개념의 소설은 너무 딱딱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쓸데없다.


그의 소설집의 둘째 특징은 잘 읽히는 문장으로 써졌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벗어나기 힘든 ‘불두덩의 중력장’처럼, 그의 문장은 원초적 흡입력이 상당하다. ‘다 까발려 놓자면, 그래 겁나게 좋았다. 온 삭신이 고소해서’라고 이어지는 등의 문장은 혓바닥에 두꺼운 기름칠을 하며 미끄러진다. 삶의 결핍과 불행 때문에 사람들은 초월적인 것에 의지하지만 ‘불두덩의 중력’은 그 초월마저도 압도한다는 것을 사이비 교단의 살벌한 얘기를 통해 풍자하고 있다.

그는 ‘살아있는 것’에 대한 탐구를 하고 있다. 아니 그것에 대한 ‘재미나게 의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욕망, 타인의 시선, 자아, 중독, 타락, 아름다움, 죽음을 소재 삼아 삶의 이야기를 했다”고 말한다.

청년 중년 노년의 삶이 각각 드러나는 연작 같은 3편이 있다. 단편 ‘슈뢰딩거 고양이’는 취업에 실패하고 편의점 알바를 하는 청년 이야기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고, 오답인 줄 알면서도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도 아는 청년은 원룸에 돌아와서는 인터넷 개인방송을 한다. 개미 먹는 방송을 한 데 이어 바퀴벌레를 기름에 튀겨먹는 방송까지 하고, 이어 말벌에 일부러 쏘이는 방송을 하게 되는 ‘오답 상황’에 이른다. 말벌에 쏘여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좀비 같은 신세의 그가 슈뢰딩거 고양이 같은 것이다. 작품 속 청년은 우리 시대 힘든 청년의 단면을 그려낸다.

중년 이야기가 들어 있는 것은 단편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다. 바람 피우다가 이혼 당한 중년 남자는 수컷 냄새로 찌든 원룸에서 혼자 산다. 그 원룸에선 욕정의 내용물이 말라붙은 휴지 뭉치도 뒹군다. ‘그토록 원하던 전율은 왜 이렇게 항상 꾸들꾸들 말라 초라해지는 걸까. 게다가 더럽기 짝이 없다.’ 그는 충수염으로 병원에 입원해 늙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쓸쓸하게 경험한다. ‘엔트로피 증가’를 체험하는 것이다. 퇴원 후 사귀던 여자와 잠자리를 하지만 제대로 안 되고, 혼자 무리하다가 여자의 발차기에 벌렁 자빠진다. ‘나는 언제쯤 이 창백한 환멸에 저항할 수 있을까’라며 이어지는 자조도 엔트로피 증가 현상의 일부다.

단편 ‘프랙탈’은 노년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시대 요양병원 모습이 들어 있다. 루게릭병 환자 A를 휠체어에 태우고 요양병원을 신나게 돌아다니던 혈액투석 환자 B가 어느 날, 거짓말처럼 죽어버리는 것이다. A의 상념이 이렇다. ‘아직은 살아 있다. 그게 전부다. 무슨 가치를 따지고 의미를 헤아리나.’ 삶의 본질은 허망한 것이다. A는 ‘있다’와 ‘없다’가 그렇게 다른 거냐를 묻는다. 과연 삶의 너머에 다른 의미가 있을까. ‘눈으로 보고 경험한 것들… 우린 겨우 일부분만 봤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전부를 본 거나 다름없어. 다 똑 같거든. 그러니까 그걸로 충분하다는 거지. 숨겨진 비밀 기호 따위는 없는 거야.’ 이 통찰이 작품 제목 ‘프랙탈’의 의미다.

과학적 개념을 작품화한 다른 단편 ‘단세포적 참회’도 잘 읽힌다. 세포를 깊숙이 들여다보는 이런 대목이 있다. 우리 피부를 이루는 표피세포는 바깥 공기에 닿기 전에 자살을 감행한 죽은 세포라고 한다. ‘죽음’이 우리 표피를 덮고 있는 셈이다. 그 죽음에 의해 피부 안쪽의 생명이 유지되기 때문에 죽음이 없으면 삶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죽음으로 뒤덮인 ‘죽음의 표피’를 보고서 아름답다, 어쩌니 하면서 떠드는 것이 우리 삶이다.

표제작 ‘원 그리기’는 중독에 대한 이야기이고, 맨 뒤 ‘문어’는 작가 어머니의 삶이 묻어 있는 자갈치 시장 얘기가 나오는 등단작이다. 그는 “살아있는 것, 사람, ‘나’에 대한 얘기가 독자들께 식상하지 않은 낯섦으로 읽혔으면 한다”고 했다. 이 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으로 출판됐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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