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함께할 때 비로소 이룰 수 있는 평등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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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정 부산복지개발원 복지정책연구부 연구위원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중심으로 지하철 시위가 다시 벌어지고 있다. 이번 장애인 지하철 시위는 2021년 12월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그에 따른 시민들의 다양한 반응을 볼 수 있다. 현재 장애인의 지하철 시위는 ‘그들의 요구사항이 무엇인가’가 아닌 ‘그들의 시위가 정당한가, 정당하지 못한가’라는 시위의 정당성 논쟁으로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한 예산 요구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죄 없는’ 시민들의 출퇴근 시간에 불편을 끼치지 말라는 것이다. 처음 시위를 접했을 때는 장애인들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응원하던 시민들 중 일부는 시위가 잦아지고 불편을 겪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전하기도 한다.

이는 그동안 여성, 장애인, 노인 등 소수 약자에 대한 다수의 관념이 그저 선한 마음에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사람들은 선한 마음으로 호의를 베풀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이들의 요구(권리)에 의해 내가 ‘불편’을 경험하게 되면서, ‘선을 넘었다’라는 생각에 이들을 비난하게 된다. 시위가 길어진다는 것은 그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못하였음을 반증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선량한 시민들이 ‘어디까지, 언제까지 참아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필자는 부산시 사회복지시설 종사자의 임금 개선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사회복지시설 종사자의 임금수준은 다른 산업군과 비교해서 낮은 수준이다. 고용노동부는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서 산업분류를 18개로 구분하고 있다. 2021년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의 월 임금총액은 17번째이다. ‘사회복지서비스업’만을 따로 떼어보면 더욱 열악하다.

물론, ‘사회복지서비스업’ 내 직종이 사회복지사부터 돌봄서비스 종사자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사회복지시설 종사자의 임금 수준이 매우 낮다고 일반화할 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능력주의’에 따라 능력 있는 사람에게 빠른 승진과 많은 보수를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에 비해, 사회복지 영역만큼은 종사자의 ‘헌신’과 ‘사명감’을 요구하며 업무능력과 관계없이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의 임금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이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을 우리는 너무나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의 정당한 요구가 일반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기 어려우며 그들의 요구가 지속될수록 ‘불편한’ 감정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돌이켜보면, 계급사회에서는 노예제가 당연하였고, 여성의 참정권은 생각지도 못하던 시대에서 일상성을 깨고 그들의 권리와 의무를 찾아, 평등을 이룰 수 있게 된 과정에 언제나 ‘당사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회변혁의 중심에는 구조적 차별에 의해 자신이 누리고 있던 특권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소수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지하철 시위로 인해 경험하게 된 비장애인의 출퇴근 ‘불편’은 목숨을 위협받으며 리프트에 오르고, 30분 거리의 약속장소에 가기 위해 3~4시간 전에는 집을 나서야 했던, 장애인과 비교해 누려온 ‘특권’은 아니었을까?

또한, 지역사회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지원을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들이 맡아주었기에 우리는 평범한 일상을 누려왔던 것은 아닐까?

강릉원주대학교 김지혜 교수는 멜빈 러너의 ‘공정세계가설’을 빗대어 “사람들은 누구나 열심히 한 만큼 결실을 본다고 믿기 때문에, 부정의의 부당함을 찾기보다 부정의의 부당함을 외치는 소수의 흠을 찾고 비난한다”고 설명한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 우리는 내가 누리고 있는 ‘특권’에 대해 성찰하고 그로 인해 불편을 겪고 있는 이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함께 사고하고 시위하여야 한다. 함께할 때 비로소 평등한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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