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분시설 2050년까지 강행?… “무리수 두다 뒤탈 불 보듯”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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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울경, 영구 핵폐기장 되나]
2. 논란의 핵, 영구처분장 건설

EU 기준 맞추려면 처분장 확보
2050년 끝내야 ‘친환경’ 승인
정부, 당초 2060년 완공 예상
10년 앞당긴 계획 터무니없어

운영을 눈앞에 둔 핀란드의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 ‘온칼로’의 2016년 공사 당시 내부 모습. 온칼로는 지하 450m 아래에 건설된 시설로 부지선정부터 운영까지 40년이 걸렸다. 부산일보DB 운영을 눈앞에 둔 핀란드의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 ‘온칼로’의 2016년 공사 당시 내부 모습. 온칼로는 지하 450m 아래에 건설된 시설로 부지선정부터 운영까지 40년이 걸렸다. 부산일보DB

정부가 원자력 발전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포함시키면서, 핵산업계와 일부 수도권 언론은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찬양하는 등 ‘원전=친환경’이라는 공식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시설을 정부 계획보다 10년 앞당긴 2050년까지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영구처분시설 건립에 속도를 붙이는 특별법안(부산일보 10월 5일 자 1·4면 등 보도)까지 가세하면서 이 같은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이는 2050년까지 처분시설 확보를 명시한 ‘유럽연합의(EU) 택소노미’에 맞추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렇게 해야만 핵산업계가 원전의 해외 수출로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용후핵연료의 영구처분시설 부지 선정부터 운영까지 수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어 2050년 처분시설 운영은 터무니없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40년 걸린 핀란드, 우리는 27년 만에?

환경부는 지난달 20일 원전을 K택소노미에 포함해 녹색경제활동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초안을 공개했다. K택소노미는 ‘녹색부문’과 ‘전환부문’으로 나뉘어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등 6대 환경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경제활동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했다. 환경부 초안에 따르면, K택소노미에는 원자력 핵심기술 연구·개발·실증, 원전 신규건설과 원전 계속운전 등의 원전 경제활동 부문이 포함됐다. EU가 올해 7월 원전과 천연가스를 ‘녹색 에너지’에 포함시킨 데 이어 우리나라도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공식화한 것이다.

하지만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인정하는 EU 택소노미의 기준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우선 EU는 첫 번째 조건으로 원전에서 2025년까지 ‘사고저항성핵연료(ATF)’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고저항성핵연료란 사고가 발생해 원자로의 냉각 성능이 떨어지더라도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것을 지연시킬 수 있는 핵연료를 말한다. 하지만 사고저항성핵연료는 아직 상용화되지도 않은 단계이다. 그다음으로 2050년까지 영구처분시설을 확보해야만 한다. 유럽에서도 핀란드나 스웨덴을 제외하면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 관련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국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입장에서도 2050년까지 영구처분시설을 확보하는 게 녹록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보면 ‘부지선정절차 착수’ 이후 ‘관리시설 부지확보’까지 13년, 이후 ‘중간저장시설 확보’까지 7년, 마지막으로 ‘영구처분시설 확보’까지 17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에 부지선정절차를 착수하더라도 영구처분시설 확보까지는 37년 뒤인 2060년에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2016년에 발표된 제1차 기본계획에서도 정부는 영구처분시설 확보까지 36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전 세계 유일한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 ‘온칼로’의 운영을 눈앞에 둔 핀란드의 경우 1983년 영구처분시설 부지확보에 착수했다. 이어 2001년에 올킬루오토를 부지로 결정했고 2016년부터 건설 중이다. 이르면 내년 3월부터 원전 3기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가 온칼로에 묻히는데, 영구처분시설 부지선정부터 운영까지 무려 40년이 걸린 셈이다.

지하 450m 이상 깊이에 무려 10만 년 동안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 영구처분시설은 이미 현재 기술의 한계를 벗어났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고리원전민간환경감시기구 최선수 센터장은 “심지층 처분은 현재까지 운영 선례가 없어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면서 “보다 발전된 기술이 나올 때까지 인간이 관리할 수 있는 곳에 사용후핵연료를 두는 게 더 안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졸속 추진에 지역만 희생될라

이처럼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 건설의 성급한 추진은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배제되면서 기존 원전지역만 피해를 떠안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구처분시설 건설은 미룰 수 없는 과제이긴 하지만, 세부적인 계획과 폭넓은 후보지 선정, 지역민 수용 과정 등 오랜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 과거 방폐장 후보지로 선정됐다가 격렬한 주민 시위 사태를 빚은 1990년 충남 안면도, 1994년 인천 굴업도, 2003년 전북 부안의 사례는 지속적인 공론화 과정이 필수적이며 주민 설득이 얼마나 지난한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정부도 2050년까지 영구처분시설 건설·운영 주장에 대해 다소 난감한 입장을 드러냈다. 산업통상자원부 박태현 원전환경과장은 “영구처분시설 건설 소요시간으로 예측된 37년은 과거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와 재검토위원회 등을 거쳐 나온 신중한 결론이다”면서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면서 사업을 진행해 나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원자력안전연구소 한병섭 박사는 “현재 원자력업계는 인력은 물론 영구처분시설을 건설할 수 있는 기술력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며 “결국 이 같은 논의가 성급하게 추진되면 원전이 밀집된 지역이 방폐장 후보지로 압축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어 “정부가 제시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조차 부지선정, 중간저장시설 확보 내용만 있을 뿐 세부적인 공론과 설득 절차가 빠져 있는데, 향후 후보지 선정과 설득과정상의 문제로 영구처분시설 건설이 계속 지연되면 결국 원전부지 내 사용후핵연료를 계속 저장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수도권 지역도 영구처분시설 후보지가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고통분담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지난달 부산에서 열린 ‘제1회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안전관리기술 포럼’의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한 경성대 환경공학과 김해창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원전 정책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간 정부는 주민 소통에 대한 신뢰성을 잃었고 안전에 대한 우려는 무엇보다 커진 상태”라며 “특정 지역에만 끝없는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후보지를 원전지역으로 설정하지 않고 수도권까지 전국을 포함해야 한다는 인식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토론회의 패널이었던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김효정 교수는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 건설은 탈정치화된 과학정책으로 봐야하며 대국민 이해와 진행 절차에서 폭넓은 수용성을 확보하는 게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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