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윤이상과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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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1951년 제작된 영화 ‘낙동강’ 스틸 컷. 부산일보DB 1951년 제작된 영화 ‘낙동강’ 스틸 컷. 부산일보DB

한국전쟁기 낙동강 전선은 마산 진동에서 영산, 창녕, 현풍, 왜관, 낙동리, 낙정리까지 135km, 왜관에서 포항에 이르는 90km의 북부 산악지대에 걸쳐 있었다. 낙동강은 해평리, 다부동전투를 비롯해 9월 공방전과 총반격에 이르기까지 처절한 전투가 이어졌던 장소다. 1950년 8월 초순, 낙동강 대공세가 시작되었다. 낙동강 수위가 낮아 도강이 수월한 때였다. 그러나 ‘일사병 전투’라 불릴 만큼 극심한 더위는 피아를 막론하고 크나큰 고통이었다. 학도병과 주민들은 군번도 없이 참전했다. 여학생도 적지 않았다. 가두검문이나 가택수색을 당해 강제로 전장으로 내몰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징집이 실질적으로 가능한 곳은 부산과 인근 지역이었다. 이 지역 사람들에게 낙동강의 심상지리가 특별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해 여름의 시산혈해(屍山血海)를 어찌 표현할 수 있으랴.

1951년 4월 20일, 경남도민의 노래 ‘낙동강’ 발표회가 문화극장에서 개최되었다. 이은상의 시에 윤이상이 곡을 붙였다. 가야와 신라의 역사적 ‘전통’에서 출발하여 ‘승리’로 나아가 폐허를 딛고 일어서는 ‘희망’의 낙동강을 그렸다. 대한방송합창단과 부산합창단이 합창을 선보였고, 부산 출신 무용가 조용자의 안무가 곁들여졌다. 그녀는 이시이 바쿠에게 현대무용을 배웠으며 조택원의 권유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키가 크고 몸이 예뻐 조선춤에는 “맹혹적(猛惑的)”이지만 신무용에는 “전도유망”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무용가다. 김호민이 지휘한 부산학생합창단은 가창 지도를 위해 통영에 순회연주를 가기도 했다. 경남고, 부산고, 경남상고, 경남여고, 부산여고 재학생이 함께했다. 민요 가락과 장단으로 구성하여 민족 정서를 불러일으킨 이 노래는 부산·경남 일대에 널리 애창되었다.

윤이상의 〈낙동강〉은 금수현이 설립한 새로이출판사의 ‘새로이 피-스 No.1’으로 1951년 11월 20일 출판되었다. 노래 한 곡이 낙동강의 심상지리를 강화했던 것일까. 1951년 말 영화 ‘낙동강’이 제작되었다. 윤이상은 영화음악 작곡을 맡았다. 1956년 11월 29일 영화음악을 토대로 관현악 모음곡 ‘낙동강의 시’를 완성했다. 프롤로그, 낙동강의 저녁, 무곡(舞曲)의 3악장이다. 2017년 발견한 자필 악보는 프롤로그, 황혼이 물들 때, 가배절(嘉俳節), 갈대밭, 풍년가, 에필로그의 6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곡은 ‘낙동강’ 영화음악의 원형을 이룬다고 한다. 경남도민의 노래 ‘낙동강’이 영화음악을 거쳐 6악장의 관현악 모음곡에서 3악장 ‘낙동강의 시’로 완성된 셈이다. 2018년 4월 5일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초연되었다. 오랫동안 잊힌 ‘낙동강’이 디지털 복원을 거쳐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다고 한다. 이 가을, 통영의 푸른 물빛을 닮은 윤이상의 음악과 함께 낙동강의 옛 풍광을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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