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BTS가 고마운 이들
김효정 라이프부장
몇 년의 외국 파견 다녀온 지인
BTS 덕분 한국인 호감 상승 느껴
갱년기를 BTS 덕질로 이겨내기도
요즘 BTS 군 면제 두고 찬반 논란
현재 시점 특례조항 공정성 살펴야
다양한 문화영역 포함할 수 있어야
몇 년의 외국 파견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인을 만났다. 파견을 가기 전 지인은 걱정이 많았다. 외국 생활 경험도 없는 그가 잠깐의 여행도 아니고 몇 년간 사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컸다. 유난히 내성적인 딸이 외국 학교에서 적응할 수 있을지 가장 걱정된다고 했다.
그동안 외국 생활에 관해 폭풍 질문을 쏟아내는 나에게 지인이 대뜸 한마디 던진다. “BTS가 고맙지.” 자기 연구 분야 말고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던 그의 입에서 가수 이름이 나온 것이 신기하다. “뭔 BTS 타령이냐?”고 핀잔을 주니 지인은 “사실 BTS 멤버가 6명인지, 7명인지 지금도 몰라. 어쨌든 BTS 덕분에 나도 딸아이도 외국 생활이 굉장히 편했어. 공로로 내가 할 수 있다면 군 면제 혜택 주고 싶다.”라며 답한다.
사연을 들어보니, 한국인이 거의 살지 않는 곳이라 한국에 대한 소개를 잔뜩 준비해갔는데 정작 ‘BTS’ 하나로 끝나더란다. 상점의 젊은 직원들은 “혹시 한국인이냐? 나 아미다.”라며 유난히 친절하게 안내했고(친구는 사실 아미가 뭔지 몰라 처음에는 그 말을 알아듣지도 못했단다), 내성적인 딸도 BTS를 매개로 먼저 다가온 친구들이 있어 학교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그 지인을 만나고 며칠 후 다시 한번 “BTS가 고맙다.”라고 고백하는 중년을 또 만났다. 대학교수인 그 친구는 일도, 가정도, 자녀 교육도 똑 부러지게 잘 챙기는 걸로 유명했다. 치열하게 인생을 살아온 그가 지난해부터 갱년기 때문인지 힘든 삶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부산에 살지 않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헛헛한 목소리가 항상 마음에 걸리곤 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전화를 한 그의 분위기가 뭔가 다르다. 이번 주말 부산에 오는데 부산 사는 친구가 생각났단다. 학회가 열리냐는 질문에 “기자면서 센스가 그렇게 없어? 이번 주말 외지인이 부산을 찾는다면 첫 번째 이유로 BTS 공연이지!”라고 소리친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정말이다. 헛헛했던 중년의 삶에 BTS가 들어오며 새로운 재미가 생겼다고 했다.
이런 변화가 제일 반가운 사람은 그의 가족. 늘 우울하게 처져있던 아내, 어머니가 달라진 것이 감사했고, 이제 남편을 비롯해 자녀까지 중년에 시작된 BTS 덕질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게임으로 단련된 클릭 실력을 바탕으로 자녀는 일명 ‘피케팅(피 튀길 정도로 치열한 공연 예매)’으로 불리는 BTS 콘서트 표를 구해주었고, 남편은 BTS 성지순례(BTS가 갔던 곳이나 BTS 이벤트가 열리는 장소를 팬들이 방문하는 행위)를 떠나는 아내를 유쾌하게 지원하고 있다.
이번 주말 부산 방문은 콘서트뿐만 아니라 영도 피아크에서 펼쳐지는 짐토버 페스티벌(지민 생일 이벤트), 대연동 지민 그림 전시까지 BTS 관련 일정들로 꽉 채웠다.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중년에게도 새로운 재미를 선물하고 감사 인사를 받는 BTS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요즘 BTS는 여러 면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주말 부산에서 열리는 2030 엑스포 콘서트도 화제지만 그보다 BTS 군 면제를 두고 펼쳐지는 찬반 논란이 더 크다. 나조차 여러 모임에서 기자로서 BTS 군 면제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을 정도이다.
BTS 군 면제 논란은 사실 BTS라는 특정 대상만 두고 고민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살펴야 할 사항은 과거에 정한 문화예술인 병역 특례조항이 2022년 현재 시점에도 공정한가이다. 군 면제라는 엄청난 혜택이 있는 42개의 경연대회가 여전히 그만큼 가치가 있는지, 과거에는 빠졌지만 지금 새롭게 넣어야 할 분야나 대회, 수상내역이 있는지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철저한 조사와 분석을 바탕으로 병역 특례조항에 들어갈 대회 내역을 수정하거나 추가할 수 있다.
순수예술만 포함된 현재 특례조항에 BTS가 속한 가수 영역뿐만 아니라 비보이, 배우, 마술, 게임, 퍼포먼스 등 현시점에 맞는 다양한 문화 분야를 추가해야 할지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실제로 이 분야에는 올림픽 수상에 버금가는 권위의 대회들과 수상내역이 존재한다.
일부에서는 클래식은 권위가 있지만 대중문화 분야는 인기 투표라서 권위를 인정하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인기’라는 척도를 함부로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가장 어렵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가능하다. 대중문화에선 “오늘은 인(IN), 내일은 아웃(OUT)”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법과 정책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현실에 맞게 수정하고 엄격하게 적용하면 된다. 그때는 맞지만, 지금은 틀릴 수 있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