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이병헌 “‘달콤한 인생’ 찍을 때 우아하게 먹느라 고생했다”
김지운 감독과 함께 ‘마스터톡’
작품 감상하며 뒷얘기도 들려줘
김 감독 “부산 로케이션 장면 많아”
이병헌 “부산극장서 개봉 무대 인사”
부산 중구 남포동 롯데시네마 대영에서 9일 오후 배우 이병헌과 김지운 감독이 함께하는 부산국제영화제 '마스터 톡' 행사가 열렸다. 왼쪽부터 조원희 감독, 이병헌, 김지운 감독. 문경덕 인턴기자
부산 중구 남포동 롯데시네마 대영에서 9일 오후 배우 이병헌과 김지운 감독이 함께하는 부산국제영화제 '마스터톡' 행사가 열렸다. 문경덕 인턴기자
달달한 이병헌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와 함께 영화를 보는 호사. 김지운 감독의 해설을 들으며 영화 ‘달콤한 인생’(2005)에 숨은 뒷이야기를 듣는 즐거움. 이런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행사가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열렸다.
배우 이병헌. 문경덕 인턴기자
9일 부산 중구 롯데시네마 대영 1관에서는 배우 이병헌과 김지운 감독이 참여하는 ‘마스터톡’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관객들은 이병헌과 김 감독의 이야기를 무선 송수신기로 들으며 함께 영화를 감상하고, 채팅을 통해 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했다.
김지운 감독. 문경덕 인턴기자
김 감독은 “코멘터리(영화에 따르는 설명)를 계속 하면서 영화를 본다는 걸 부산에 오고 나서야 알았다”며 “처음엔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재밌다. 이런 스크리닝 방식은 유례가 없지 않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이날 진행을 맡은 조원희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발한 방식이다. 이제는 다른 영화제에서도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과 이병헌은 영화 속 먹방이나 조명 같은 사소한 부분에 대해서도 깨알 같은 설명을 해줬다. 이병헌은 “이 영화를 찍을 때 우아하게 먹느라 고생했다”며 “굳이 따지자면 내 실제 먹방 스타일은 ‘내부자들’에 가깝다”고 말해 관객들의 웃음을 샀다.
김 감독은 “저렇게 나무가 흔들리고 돌풍이 부는 장면은 선우에게 파란이 인다는 의미다”며 “내 영화가 스토리가 빈곤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미장센이나 미술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하는 게 느와르에 잘 맞는 연출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 '달콤한 인생'의 한 장면. 김지운 감독은 “이 장면은 퓨전 한식집에서 찍었다”며 “공간의 구도가 좋았다”고 설명했다.CJ ENM 제공
로케이션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오프닝 신과 관련해 김 감독은 “호텔 스카이라운지 장면은 부산 범일동 크라운호텔과 서울의 호텔을 비롯해 총 4곳에서 찍었다”고 설명했다. 동구 크라운호텔 맞은편 일명 ‘장영자 빌딩’도 스크린에 담겼다. 공사가 중단돼 있을 당시 폐건물 풍경으로 영화에 남았다.
김 감독은 “부산 로케이션 장면이 많다. 부산을 좋아하기도 하고, 유서 깊은 건물과 부산만의 아우라가 있어 화면에 담았을 때 분위기가 좋아진다”며 “당시 부산 시민들도 영화 촬영에 관대했다”고 회상했다.
영화 '달콤한 인생'. CJ ENM 제공
이병헌은 “17년 전에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맞은편 부산극장에서 무대 인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며 “2000석짜리 객석이 쫙 비어있고 30~40명 정도만 앉아있어 난감했던 광경이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희수(신민아)가 남자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선우(이병헌)가 눈감아 준 걸 강 사장(김영철)은 어떻게 알았냐는 관객 질문에 김 감독은 “어떻게 안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원래 경쟁자인 김뢰하가 이병헌의 뒤를 쫓는다는 설정이 있었는데, 그런 설정을 깔면 의외성의 효과가 떨어진다”며 “갑작스럽고 느닷없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고, 수컷들의 알량한 관계는 오히려 작은 것에 금이 가고 균열이 생기지 않냐”고 부연했다.
부산 중구 남포동 롯데시네마 대영에서 9일 오후 배우 이병헌과 김지운 감독이 함께하는 부산국제영화제 '마스터 톡' 행사가 열렸다. 문경덕 인턴기자
선우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는 ‘나르시시스트’라고 정의했다. 김 감독은 “멋있게 말하고, 난폭한 운전자를 참교육 하는 장면에서도 상의를 벗기보다는 단추를 오히려 채운다”고 설명했다.
이병헌도 동의했다. 그는 “선우가 쉐도우 복싱을 하고,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만족하는 것 자체가 나르시시스트적인 설정”이라고 말했다.
배우 이병헌. 문경덕 인턴기자
영화는 그런 선우가 망가져 가는 모습을 처절하게 그린다. 엄청나게 두드려 맞고, 땅에 묻히고, 천장에 매달리기까지 한다. 이병헌은 “다른 어떤 영화보다 ‘달콤한 인생’ 촬영 때가 힘들었다”며 영화 속 대사를 인용해 “감독님, 나한테 왜 그랬어요?”라고 따져 물었다.
김 감독은 “젊은 혈기였다. 당시 한국영화가 저마다 엄청난 에너지의 영화를 갖고 성장하던 르네상스 시기였다”며 “이병헌이 땅속에 묻힐 당시 비도 오고 해서 흙이 엄청나게 무거웠다”고 떠올렸다. 이에 이병헌은 “감독님의 젊은 혈기 때문에 나는 죽을 뻔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김 감독은 이 영화가 어떤 의미에서는 성장 영화라고 했다. 그는 “선우가 비굴하고 찌질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을 냉혹하게 바라보면서 성숙해 간다”며 “주인공의 그런 과정을 빌드업 해가며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이병헌이 유일무이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우 이병헌. 문경덕 인턴기자
김 감독은 또 “영화 찍을 때도 그런 이야기를 했던 거 같은데, 이병헌 씨의 가장 아름다울 때를 찍을 수 있어 좋았다”고 반복해서 언급했다. 관객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격하게 공감했다.
이병헌은 “멜로도 아니고, 멋있는 척하는 영화도 아니고, 피투성이에 헤어도 신경 안 쓰고 너덜너덜해진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감독님 말씀을 잘 몰랐다”며 “오늘 보니까 감독님이 옛날에 했던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알겠다. 17년 전 젊은 시절의 제 모습을 보는 느낌이 묘했고, 표정들이 나도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김지운 감독. 문경덕 인턴기자
이병헌은 이어 “십몇 년 만에 다시 봤는데, 오래된 영화인데도 감독님 연출 덕분인지 하나도 촌스럽지가 않다. 다시 개봉해도 될 것 같은 세련된 연출, 음악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영화, 자랑스러운 작품을 여러분들과 오늘 함께 봐서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관객들도 박수로 화답했다.
마지막으로 근황에 대한 질문에 이병헌은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촬영 이후로 쉬고 있다. 내년에 ‘오징어 게임’ 시즌2에 들어가는 것 외에는 결정된 게 없다”고 답했다.
배우 이병헌. 문경덕 인턴기자
김 감독은 “송강호,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씨와 함께 찍은 영화가 최근 편집이 끝났다”며 “1970년대에 영화를 만드는 이야기로, 내년 개봉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차기작은 영화 ‘거미집’으로, 영화의 결말을 바꾸려는 감독이 검열 당국의 방해와 배우의 몰이해 등 각종 악조건 속에서 촬영을 감행하면서 벌어지는 웃픈 상황을 그린 블랙 코미디다.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