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없이 부족한 문화 인프라… 턱 낮춘 생활밀착형 공간 [新 문화지리지 2022 부산 재발견] 4.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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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문화지리지 2022 부산 재발견] 4. 틀을 깨자, 복합문화공간

문화기반시설 전국 17개 시·도 중 여전히 최하위
공간 확장성·지속적 협업 통한 변화 움직임 고무적
시민뜨락축제 등 멀게 느껴진 문화공간 변신 주목
생활문화센터 21곳 연계하면 뜻밖의 시너지 효과

예술가·문화예술단체와의 협업을 통해 지역문화공간의 역할과 지평을 넓히고 있는 F1963의 ‘2018 부산국제즉흥춤축제’ 모습. 예술가·문화예술단체와의 협업을 통해 지역문화공간의 역할과 지평을 넓히고 있는 F1963의 ‘2018 부산국제즉흥춤축제’ 모습.

흔히 문화는 ‘뙤약볕 아래 나무 그늘 같은 존재’라고 한다. 그런 문화가 늘 시민과 함께하고, 시민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가 높아지는 것, 이는 수많은 도시가 꿈꾸는 미래상이며 문화예술의 참모습이다. 여기서 ‘시민의 문화예술 향유’는 바로 문화공간과 직결된다. 이중 ‘문화회관(혹은 문예회관) 같은 공공 복합문화공간은 한 도시의 문화기반시설로 시민을 즐겁게 하고, 도시의 창의성을 높이는 데 이바지한다. 또한 이들 공간은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과 함께 한 도시의 문화 인프라 수준을 살피는 맨 앞자리에 선다. 흔히 인구 대비 문화시설 수를 얘기할 때도 이 문화공간은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산의 문화기반시설(2020년 기준)은 인구 100만 명당 38.32개로 전국 17개 시·도 중 최하위이다. 이는 10여 년 전에도 그랬다. 이게 한 도시의 문화 수준을 살피는 완전한 척도는 아니지만, 문화에서만큼은 아직 부산의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름 시민의 ‘문화 허기’를 채우기 위한 부산시와 지역 문화판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그 발길은 멀고도 더디다.


부산 기초단체 문화회관 중 발 빠르게 민간 예술 전문가를 공개 채용한 바 있는 금정문화회관. 부산 기초단체 문화회관 중 발 빠르게 민간 예술 전문가를 공개 채용한 바 있는 금정문화회관.

■변화의 움직임, 작지만 고무적이다

10여 년 새 부산엔 영화의전당, 부산도서관 등 몇몇 대형 문화공간과 ‘한성1918 부산생활문화센터’(이하 한성1918) 같은 기존 공간을 리모델링한 문화공간이 들어섰다. 또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 건물과 부산근대역사관 건물을 리모델링해 선보이는 ‘부산근현대역사관’(2023년 6월 개관 예정)이나 ‘부산국제아트센터’(2023년 하반기 개관 예정)도 조만간 들어설 예정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동안 복합문화공간이 획기적으로 증가하진 않았다. 그러나 작은 변화의 흐름은 읽힌다. 바로 특정 공간의 확장성과 다양성이다. 변화의 시도는 새로 건립된 도서관이나 박물관처럼 몇몇 전문 공간에서 보인다. 이를테면 부산도서관이나 국회부산도서관, 금샘도서관이다. 이들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고, 빌려주는 것에 안주하지 않았다. 전시나 공연, 교육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시민에게 다가왔다.

장애 예술인 전용 창작공간인 ‘온그루’는 그 자체로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여기서도 공간의 확장성이 보인다. 최근 부산문화재단과 시민, 지역 예술가들이 참여해 마련한 ‘2022 문화공유 네트워크: 다 함께, 가까이, 늘’과 같은 행사를 통해서다. 문화공유 네트워크에 참여한 20여 곳의 공간들은 대부분 단일 공간이거나 독립된 공간이지만, 지역별로 6~7개 공간이 씨줄과 날줄이 돼 문화의 확장성을 꾀했다. 공간 연계, 공간 네트워킹을 통한 문화 공유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하겠다.

또 있다. 민간과 공공의 만남을 통한 시너지 효과다. 우리는 F1963에서 이를 보았다. F1963은 고려제강과 부산시(부산문화재단에 위탁)가 운영한다. 이는 2016년 8월, 부산시와 고려제강의 복합문화공간 조성 업무협약(MOU) 체결을 바탕으로 한다. 부산비엔날레를 비롯한 각종 문화행사 개최를 통해 그 저력과 힘을 보였다. F1963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역 예술가나 문화예술단체와의 지속적인 협업을 통해 지역문화예술 향유 공간으로서의 그 역할과 지평을 꾸준히 넓혀왔다. 이런 흐름에는 경성대 콘서트홀도 그 맥을 같이 한다.

한성1918과 부산근현대역사관 같은 기존 공간의 활용도 눈엔 띈다. 천편일률적이었던 기존 공공 복합문화공간의 다변화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고무적이다. 다만 한성1918은 기획 단계부터 사전 수요 추정, 시설과 규모, 장소의 적정성 등이 면밀히 검토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노인이나 장애인이 다니기에 불편함이 있기 때문이다.

차별화된 콘텐츠로 주목받았던 부산시민회관의 ‘시민뜨락축제’ ‘천원음악회’ 등은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예술을 제대로 보여준 예다. 공공 문화공간이 시민과 문화를 매개로 어떻게 소통해 나가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야외광장에서 펼쳐진 시민뜨락축제는 공공 문화공간이 특정 공연이 있을 때만 찾는 곳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180도 바꿔 버렸다. 또한 시민들에게 문화공간이야말로 사람들이 밤에만 북적이는 곳이 아니라 언제든지 가면 즐거운 곳, 살아 숨 쉬는 공간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시민 문화권을 보장하고 생활문화 활성화를 위해 만들어진 ‘생활밀착형 문화공간’인 생활문화센터는 ‘신문화지리지 시즌 1’에선 없었다. 부산에는 광역생활문화센터인 ‘한성1918’을 비롯해 모두 21곳(광역 1, 기초 20)의 생활문화센터가 있는데, 이는 전국 7대 도시 중 가장 많다. 이곳에선 다양한 생활문화활동이 펼쳐진다. 센터 하나로 보면 개별 공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지역에 기반을 둔 센터와 잘 연계한다면, 예상치 못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센터 수를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경기도나 대구, 인천처럼 먼저 내실을 다지는 게 더 중요하다. 관리·운영의 다변화와 전문인력의 투입을 통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게 먼저다.



지도 내부 그림=하미화·정영인, 국립해양박물관 그림=김성철 지도 내부 그림=하미화·정영인, 국립해양박물관 그림=김성철

■시민을 중심에 놓고 연계·소통하라

복합문화공간은 더 변해야 한다. 시민문화회관처럼 공공 복합문화공간이자 거점 문화공간은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소프트웨어가 매우 중요하다. 이게 빈약하면 화려한 문화공간도 자칫 ‘빛 좋은 개살구’ 꼴이 될 뿐이다.

문화공간은 앞서 언급했던 ‘시민뜨락축제’ ‘천원음악회’처럼 시민의 마음을 훔쳐야 한다. 밤에만 불을 켜는 곳이 아니라, 낮에도 사람들이 북적이고, 장르별 벽도 허물고, 융복합도 시도되고, 테크놀로지 등을 활용한 입체적인 프로그램이 펼쳐지는 곳, 이게 복합문화공간들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그런 점에서 공공의 복합문화공간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공간의 복합도 필요하지만, 내용 자체가 복합적인 새로운 시도들도 중요하단 얘기다. 문화계 한 관계자는 “시민에게 문화공간은 때론 아이에서부터 노인까지 세대를 불문하고 함께할 수 있는 시민의 문화 놀이터가 되어야 한다. 이는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성으로 시민에게 끊임없이 다가가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문화회관 같은 공간들은 지역의 거점이 돼 문화적인 힘을 발휘해 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공 복합문화공간의 지향점은 당연히 시민이 중심이어야 한다. 이를테면 시민을 위한 문화교육이나 문화 아카데미 확대, 이에 따른 공간 확보 등 시민과 소통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논의되고 시행되어야 한다.

또 공간대여나 임대 방식에서 벗어나 전문가나 외부 인력을 도입한 공간 운영을 적극적으로 펼쳐 나가야 한다. 최근 일부 문화회관에서 외부 기획 전문가를 채용하는 사례가 있긴 하지만, 여전히 상당수 문화회관은 전문성과는 거리가 멀다.

대관 중심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각 구·군의 문화회관은 부산문화회관처럼 재단법인으로 전환, 운영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키워나갈 필요가 있다. 부산연구원 오재환 선임연구위원은 “무엇보다 구·군 문화회관 같은 문화시설이 기획 또는 문화 전문인력을 강화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져 시민의 문화 향유 폭을 넓히는 데 이바지한다”고 말했다.

각각의 문화공간은 씨줄과 날줄이 돼 문화의 질을 높이는 데도 기여해야 한다. 부산문화회관 주변에는 시립박물관,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유엔기념공원 등이 인접해 있다. 공간끼리 연계하기에 너무나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이들 공간 간 기획이나 프로그램의 연계성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근거리에 있는 문화공간들이 연계와 협업을 활발히 펼친다면 이는 반가운 일이다. 시민들에게는 입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기획을 선사할 수도 있다. 연계는 도시 문화를 살찌우는 밑거름이다.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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