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예측 불가능·유머의 대가 “노동자 계층에 애착 돌려주고 싶어”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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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기로디 감독 ‘마스터 클래스’

노동자 가정서 TV로 영화 접해
야간 경비원 일하며 영화 찍어
첫 단편에선 직접 출연하기도
스타 없이 주목받는 영화 만들어
“내 방식 바꾸고 싶지 않다” 강조

영화 ‘노바디즈 히어로’ 스틸 컷. BIFF 제공 영화 ‘노바디즈 히어로’ 스틸 컷. BIFF 제공

예측 불가능성과 유머.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은 프랑스의 거장 알랭 기로디 감독의 영화를 설명하는 두 가지 키워드다.

올해 BIFF에서는 그의 신작 ‘노바디즈 히어로’가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됐다. 테러 사건이 벌어진 프랑스의 한 도시에서 펼쳐지는 독특한 코미디로, 영화는 끝까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고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10일 오후 3시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마스터 클래스’에서 관객들은 거장의 영화 철학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진행을 맡은 허문영 BIFF 집행위원장은 기로디 감독에 대해 “세계적인 거장이기도 하고, 특히 제가 열렬한 팬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감독 5명을 꼽으라고 하면, 주저 없이 그중 1명으로 꼽겠다”고 팬심을 드러냈다. 허 집행위원장은 이어 “프랑스 영화계에서도 예외적인 경우로, 시골에서 태어났고 영화 교육을 전혀 받은 바가 없다”며 “인텔리(지식인) 출신이 많은 프랑스 영화계에서 아웃사이더 같은 존재다”고 소개했다.

기로디 감독은 “집안이 농부, 노동자 출신이다. 아버지는 공장에서 일하고, 어머니는 농장 관리 일을 했다”며 “공부는 거의 안 했고, 일을 일찍 시작해서 아르바이트나 설거지, 건설 쪽 일을 했다”고 입을 뗐다.


알랭 기로디 감독이 10일 오후 3시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마스터 클래스’에서 자신의 영화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문경덕 인턴기자 알랭 기로디 감독이 10일 오후 3시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마스터 클래스’에서 자신의 영화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문경덕 인턴기자

하지만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어려서부터 했다. 그는 “시골에 살다 보니 11살, 12살 때 처음 극장이 아닌 TV를 통해 영화를 봤고, 서부영화를 좋아했다”며 “집에서 파리가 너무 멀고,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 수준의 계층이 돼야 영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처음엔 내가 접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멀고 복잡해 보이는 영화 대신, 소설 쓰는 일부터 시작했다. 기로디 감독은 “내가 쓴 소설을 출판사에 보내 봤지만 답이 오지 않았다”며 “6개월 뒤에 읽어 보면, 내가 봐도 별로긴 하더라”고 웃었다. 자신이 쓰고 있는 것이 소설인지, 시나리오인지도 알 수 없던 나날을 보내다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영화를 찍게 된다. 그는 “프랑스는 처음 영화를 시작하는 사람에 대한 지원 시스템이 잘돼 있어 예산과 배우 등의 지원을 받아 첫 단편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며 “첫 영화는 전혀 인기가 없어서 영화제 초청도 못 받았지만, 영화 길이가 점점 길어지면서 제대로 입문도 하게 됐고 이제는 영화를 통해 먹고살고 있다”고 말했다.

기로디 감독은 본인이 직접 출연한 첫 단편 ‘영웅들은 불멸이다’(1990)로 데뷔했다. ‘용감한 자들에게 휴식이란 없다’(2003)가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소개됐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호수의 이방인’(2013)이 2013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감독은 ‘도주왕’(2009), ‘스테잉 버티컬’(2016) 같은 화제작을 내놓으며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감독으로서의 딜레마도 털어놨다. 그는 “내 방식대로 인물, 세계를 구상하고 자유를 가지고 작은 팀과 제작을 하면서 정제된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도 “한편으로는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대규모 프로젝트, 스타 캐스팅으로 많은 예산을 지원 받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야심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호수의 이방인’은 적은 예산으로 만들었고, 1만 명 정도의 프랑스 관객만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인기를 얻었다”며 “관객이 1만 명이든 100만 명이든 내 방식을 바꾸고 싶지는 않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캐스팅하고 싶은 스타 배우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하비에르 바르뎀, 안토니오 반데라스, 브래드 피트 등을 거론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때론 황당무계하다 느낄 만큼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놓고, 혹시 현장에서 영화를 완성해 가는 스타일이냐는 질문도 나왔다. 그러나 감독은 “시나리오를 철저하게 쓰는 편이다. 시나리오를 쓰는 중에도 제 자신에게 놀라움을 선사하는 게 즐겁다”는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영화 작업에 대해 “고독한 시나리오작업으로 시작해 공동체 성격이 강한 촬영 단계로 넘어간다. 이상으로 가득한 영화가 현실의 제약에 직면하게 되고, 편집 단계가 되면 두 사람이 단출하게 써 내려가는 ‘지겨움과의 싸움’이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신작 ‘노바디즈 히어로’를 비롯해 그의 작품에는 머리 숱이 적고 벌거벗은 중년 남성이 자주 등장한다. 이에 대해 감독은 “중년과 노년의 배 나온 아저씨들의 성, 관능이 큰 주제인 것 같다. 영화나 TV 스크린에서 그들에게 자리를 돌려주고 싶었다”며 “개인적인 욕망이기도 하지만 농부, 노동자 계층에 부드러움, 애착 같은 걸 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좋아하는 한국 감독이 많다”며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고 박찬욱, 봉준호, 김기덕 작품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올해 BIFF의 경쟁부문인 뉴 커런츠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한 그는 “영화제에서 본 영화 중에서도 내 스타일의 한국영화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 심사 결과 발표 전이라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해 줄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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