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산세 공장’ 결국 백지화… ‘행정 불신’만 남겼다
대독산단 내 공장 추진 사업자
발암물질 우려 주민 반발에 백기
투자협약까지 맺은 고성군 ‘머쓱’
오락가락 행정 지역 갈등 부추겨
고성지역 농·어업인과 주민, 환경단체, 청년대표 등으로 구성된 반대투쟁위원회는 매주 군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대독산단 산세·도장공장 ‘허가 취소’를 촉구했다. 부산일보DB
속보=경남 고성군 대독산업단지 내 ‘산세 공장’(부산일보 8월 2일 자 11면 등 보도)이 백지화됐다. 1급 발암물질 배출을 걱정한 인근 마을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고성군마저 뒤늦게 허가 취소 결정을 내리자 강경했던 민간 사업자도 결국 백기를 들었다.
이로써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사업자와 투자협약까지 맺었던 행정에 대한 불신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못 믿을 행정’이란 꼬리표가 향후 기업 유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1일 고성군에 따르면 산세 공장 사업자인 A사는 최근 군에 제출한 대독산단 계획 변경 신청서를 통해 ‘산세 공정 제외’를 요청했다. 군은 “관련 문서가 접수된 상태”라며 “관리기본계획 변경안이 접수되면 관련 부서와 협의해 건축물 변경을 승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산 세정은 스테인리스강을 생산할 때 황산이나 염산 등을 이용해 표면에 부착된 부산물을 제거하는 공정이다. 중소 기자재업체인 A사는 앞서 경남도와 낙동강유역환경청으로부터 산세·도장 공정을 허가받아 대독산단 내 공장을 건립했다. 현재 산세 공정을 제외한 도장(금속가공제품제조) 공장만 ‘건축물 일부 사용 승인’을 받아 가동 중이다.
산세 공장이 들어선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한 인근 마을 주민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산 세정 과정에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된 니켈을 비롯해 각종 유해 물질이 발생한다는 이유였다. 대책위를 꾸린 주민들은 군청 앞 집회를 통해 연일 부당함을 호소하고, ‘공장건립 건축 허가처분 취소’ 행정소송과 집행정지 신청까지 냈다. 그럼에도 ‘법적으로나 행정절차 상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던 군은 민선 8기 새 집행부가 들어서자 ‘사업자가 거짓으로 부당하게 건축 승인을 받았다’며 돌연 ‘허가 취소’를 통보했다.
대독산단 입주 기업은 사전에 특정대기유해물질 배출 여부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애초 도장업만 계획했던 A사는 작년 12월, 산단 입주를 앞두고 군에 제출한 환경보전방안검토서에 유해 물질 발생은 없다고 신고했다. 그런데 지난 1월 산세 공정 허가를 받으려 경남도에 낸 ‘대기배출시설 설치 신고서’에는 유해 물질(니켈)이 발생한다고 명시했다. 군과 도에 신고한 내용이 달랐던 것이다. 군은 일련의 행위가 ‘중대한 결함’이라고 판단했다.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 제48조는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인가·승인 또는 지정을 받은 경우, 관련 인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고성지역 농·어업인과 주민, 환경단체, 청년대표 등으로 구성된 반대투쟁위원회는 군청 앞 집회에서 산 세정 공정의 위험성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부산일보DB
난데없는 통보에 A사는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었다. 행정소송을 비롯해 그동안의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도 검토했다. 하지만 기존 시설 준공 등 마무리해야 할 행정 절차가 남은 상황에 인허가권자와 법적 다툼을 벌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당분간은 행정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 자칫 미운털이 박혀 임시 사용 중인 도장 공장마저 준공이 지연되면 금전적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설령 소송에서 이긴다고 해도 계속될 민원에 정상 가동도 어렵다.
결국 오락가락 행정이 지역 내 갈등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산세 공장이 가동될 대독산단 반경 1km 이내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비롯해 학교, 어린이집, 유수지 생태공원 등이 자리 잡고 있지만 공론화 절차는 없었다. 오히려 선거를 앞둔 정치권까지 가세해 논란이 가중되자 “우려하는 환경 피해는 없다”는 업체 측 입장을 대변하는 데 급급했다.
고성군 스스로 행정 불신을 자초했다는 점도 부담이다. 지역 상공계 관계자는 “있어선 안될 오점을 남겼다. 없는 (행정)편의를 줘도 부족할 판에 이미 내준 허가까지 취소하는 곳에 누가, 뭘 믿고 투자하겠나. 기업이나 민자 유치 협상에 있어 내내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