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상영작 리뷰] 샤오추젠 ‘남쪽, 적막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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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운행’ 기차에 쌓인 일상·추억
기차는 멈춰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영화 ‘남쪽, 적막철도’ 스틸 컷. BIFF 제공 영화 ‘남쪽, 적막철도’ 스틸 컷. BIFF 제공

2020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수십년 간 수 없이 많은 사람들 태워다줬던 대만 남회선의 푸른 열차가 그 역사를 뒤로하고 마지막 운행을 한다. 수동으로 열리는 창문, 대만 남부의 습한 공기와 빽빽한 숲의 풍경, 하지만 거기에 에어컨은 고사하고 천장에 띄엄띄엄 달린 선풍기, 덜컹이는 소음, 말끔한 제복차림의 기관사와 역무원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기차를 타며 무수한 일상과 추억을 쌓았을 승객들. 여기엔 어딘가 투박하면서도 애틋한 무언가가 가득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의 KTX를 떠올려보면 적잖이 생경하고 대조되는 풍경이기도 하다.


대만 남부 순회 남회선 배경

기차 안팎의 삶 단면 담아내


샤오추젠의 ‘남쪽, 적막철도’는 대만 남부를 순회하는 철도노선 남회선의 역사와 그에 관한 기억을 간직한 엔지니어, 기관사, 역무원, 승객, 철도사진가 등 다양한 사람들을 다룬다.

이렇게만 요약하면 이 영화가 마치 ‘철도덕후’만을 위한 영화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철도를 기록과 분석의 대상으로만 대하지 않는다. 그보다 여기엔 기관사의 아내와 자식들, 대를 이어 철도일을 하는 아버지와 아들, 남회선이 들어서며 울거나 웃었던 가오슝, 컨딩, 타이둥 등 대만 남부의 사람들, 처럼 기차의 옆이나 밖에서 각자 삶을 살고 있었던 이들의 어떤 생생한 단면이 사려 깊게 담겨있기도 하다.

요컨대 여기엔 철로를 따라 움직이는 기차를 타거나 지켜보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서려있다. 샤오추젠은 이 영화를 기차의 친구로 만들고, 나아가 이 영화를 보는 관객도 그 우정에 초대하고 싶었던 걸까? 한 장면이 떠오른다. 한때 기관사로 일했었고 은퇴한 후에 오래된 철도수집품을 모으는 남자를 인터뷰하고 있다. 남자는 기관사의 불안과 안도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한다. 혼자 무수한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철도원이 짊어져야할 운명에 관한 말들. 그런데 그때 프레임 밖에서 (감독으로 추정되는)목소리가 밝게 웃으며 “혼자 그 부담을 다 져야 하기 때문이죠?”하고 되묻는다. 그러자 그때까지 근엄하게 말하던 남자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래, 우리도 무섭단 말이지” 하고 답한다.

이 장면에서 남자의 말을 경청하면서도 해맑게 그에게 반문하는 인터뷰어의 존재는 이 영화가 철도의 객관적 관찰자가 아니라 철도의 친구임을 따뜻한 방식으로 증명한다.

스스로에 대해 말하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공감하고 그것을 밝게 염려하는 것. 우리는 여기서 모종의 우애를 목격하고, 그것을 보고 있던 우리 또한 간접적으로 그것을 나누게 된다.

그래서일까, 이 외에도 인터뷰어가 대화에 끼어드는 순간은 있었고, 이것이 그 자체로 독특한 다큐멘터리적 방법론은 아님에도, 이 작은 우정의 순간이 내게는 깊이 남는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대만 남회선 노선의 기차를 한 번도 타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평생 타볼 일이 없을 수도 있다. 이 말을 하는 나 또한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도 누군가 연루되어 살아가고 있음을, 그러니까 누군가가 울고 웃으며 기차에 타고, 포옹하거나 밝게 인사하며 기차에서 내리고 있음을, 짧게 나마 엿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풍요로운 일이 아닐까. ‘남쪽, 적막철도’가 내게 보여준 것이다.


구형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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