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88) 구상에서 추상으로, 문신 ‘곤충시리즈’
조각가 문신(1923~1995)은 단단한 재질의 나무, 스테인리스 스틸 등의 재료를 사용해 강인한 생명력이 돋보이는 추상 조각으로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한 작가다. 1938년부터 일본 도쿄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배운 문신은 1945년 한국에 돌아왔다. 1950년대까지 서울과 부산, 마산 등지에서 자연을 주제로 한 구상회화를 선보이며 화가로 활동했다. 1957년에는 유영국, 박고석, 한묵 등이 결성한 모던아트협회에 영입되어 연례 작품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문신은 1961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후 당시의 미술 흐름이던 앵포르멜 등의 추상 미술을 접했다. 이를 계기로 작가는 표현 방식과 매체 등 작품 세계의 확장을 경험한다. 조각가로 전향한 문신은 이후 1980년 귀국하기 전까지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본격적으로 스케일이 큰 추상 조각을 제작했다. 문신은 유럽 각지의 국제적인 조각전과 심포지엄에 초청되는 등 조각가로서의 입지를 다졌고 1991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역사박물관 초대전, 1992년 파리시립미술관 초대 회고전을 갖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부산시립미술관에 소장된 문신의 작품 제목은 ‘곤충시리즈’이다. 참나무와 흑단으로 1967년에 제작한 작품이다. 참나무와 흑단을 둥글게 깎고 다듬어 마치 알 형상과도 같은 구조물을 반복해서 이어 붙였다. 문신 조각 다수에서 두드러지는 ‘좌우대칭의 볼륨’과 ‘선구조의 구조물’과는 다른 양태를 보여주고 있어, 문신 조각의 또 다른 측면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작품 제목 또한 시대가 올라가며 보다 추상화하는 다른 작품의 제목과 달리 구체적인 자연과 생물의 이름을 붙였다. ‘매듭이 지어진 알’ 형태의 반복은 향후 작품에서 보이는 단위 구조의 반복을 예고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구상에서 추상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형태로 보인다. 이 시기 문신의 작품은 작품 제목과 형태에서뿐만 아니라 자연 상태의 나무줄기 방향을 그대로 수렴한 점에서도 자연 친화적, 순응적 태도를 찾을 수 있다. 짜임새를 강조하는 말년의 작품으로 발전하기 전에 자연물이 가진 구조와 상태를 최대한 수렴하여 그 구조가 지닌 힘을 분산시켜 균형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김진아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