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최고의 의료관광 도시'와 '최악의 건강 도시'
박태우 라이프부 차장
동북아 의료관광 허브도시 부산 이면엔
암·심장질환 사망률 1위 ‘단명 도시’오명
빈곤노인 피할 수 있는 죽음 막을 수 있는
획기적이고 과감한 의료정책 서둘러야
“뛰어난 의료 기술과 첨단 인프라에 환상적인 바다와 비치, 호텔, 백화점까지 부산은 세계적 의료관광 도시로서 여건을 모두 갖췄다.” 지난달 30일 ‘2022 부산국제의료관광컨벤션’을 찾은 카자흐스탄 국립의과대학병원의 투르그누브 바우르쟌 씨는 동북아 의료관광 허브로 비상하고 있는 부산의 저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부산은 4개의 대학병원을 필두로 ‘꿈의 암치료 연구병원’인 동남권원자력의학원에 ‘성형·뷰티 1번지’ 서면메디컬스트리트까지 외국인들이 치료 받고, 휴양하고, 관광을 즐기기에 최적의 여건을 갖췄다. 팸투어를 통해 부산을 일별한 이방인에게 부산은 ‘웰니스 건강 도시’이고, 그곳에 살고 있는 시민들 역시 건강한 삶을 누리는 것으로 비쳤을 것이다.
하지만 ‘최고의 의료관광 도시’ 부산의 속살을 한꺼풀 들춰보면 ‘최악의 건강 도시’라는 참담하고도 불편한 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지난 8월 국토연구원의 균형발전 모니터링 &이슈 브리프에 따르면 부산 시민의 기대수명은 82.7년으로, 전국 17개 특광역시·도민 중 경북·충북도민(82.6년)에 이어 세 번째로 짧았다. 명색이 ‘대한민국 제2도시’에 산다는 부산 시민의 수명은 한국인 평균보다 0.8년 짧았고, 서울 시민과 비교하면 2.1년 빨리 죽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 명대로 오래 살기를 원하다면 부산에 산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선택이 된다는 얘기다.
이 같은 ‘단명 도시’ 부산의 단초는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21년 사망원인 통계’에서 찾을 수 있다. 부산의 암 사망률은 10만 명당 92.3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암 발생률은 전국이 대동소이한데, 유독 암에 걸려 죽는 사람은 서울(78.0명)에 비해 18%나 많았다. 알츠하이머 질환 사망률도 전국 최고였고, 당뇨병,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사망률은 경남에 이어 2위였다. 부산에 노인 인구가 많으니 당연히 사망률도 높게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통계는 인구구조를 동일하게 놓고 비교한 연령표준화 사망률이기 때문에 고령화에 따른 영향을 제외한 것이다. 한층 심각한 것은 지역별 건강 조사가 시작된 2000년 이후 부산은 해마다 암과 심장질환 사망률 1위의 오명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건강지표가 전국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높은 질병 사망률을 놓고 환경적 요인, 도시 기질적 원인, 의료 접근성 등 여러 의견이 분분하면서 아직도 명쾌한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은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부산의 노인 빈곤율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표준화된 암 치료 기술과 신약 개발, 조기검진 등으로 국내 암 생존율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암은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고, 관리 가능한 질환이다. 반면 여전히 치료에 돈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질환이기도 하다. 같은 병기의 암이라도 어느 병원에서 누구에게 어떤 치료를 받았느냐에 따라 생존율과 회복율에서 상당한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평생을 술과 담배에 의존하면서 제대로 된 식사도 못 해 영양과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가난한 처지의 노인을 상정해보자. 건강검진도 빼먹고, 아파도 제때 병원 치료도 받지 않으면서 병을 키워오던 이 노인이 덜컥 암에 덜컥 걸렸다면 뒤늦게 치료를 받는다 한들 암세포와의 싸움에서 이겨내기는 쉽지 않다. ‘돌연사의 주범’인 급성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심·뇌혈관 질환도 마찬가지다. 증상이 발생했을 때 빨리 병원으로 가서 응급치료를 받아 뇌손상을 최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주위에서 보살피는 이 없고, 의료 접근성도 떨어지는 빈곤 노인이 ‘골든타임’을 지켜내기는 쉽지 않다.
결국 여건이 갖춰졌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죽음을 피하지 못하는 것이 부산이 ‘건강 최악 도시’로 전락한 원인이 됐을 것이다. 건강과 생명 문제까지 냉혹한 자본의 논리에 내맡길 게 아니라면 공공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부산일보〉는 건강 최악 도시 부산의 오명을 벗고자 2013년부터 수차례 기획 기사를 통해 마을 단위 건강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을 역설하는 등 지역별·계층별 건강 불평등 해소를 위해 노력해왔다. 부산시도 서부산의료원 건립을 추진하고, 매년 지역사회건강조사를 통해 시민들의 건강지표 개선에 나서는 등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여전히 역부족인 게 현실이다. 부산은 올해 고령인구 비율이 20%를 넘기면서 전국의 광역자치단체 중에서는 처음으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만큼, 고령화 속도가 숨가쁘다. 획기적이고도 과감한 의료정책 없이는 해외 환자들이 건강을 되찾기 위해 찾는 부산이 정작 시민들은 일찍 죽어가는 불행한 도시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