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리의 묘념묘상]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동물 학대 영상을 공유하는 ‘고어방’을 아시나요. 입에 담기도 어려울 만큼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이고, 그 영상을 공유하는 SNS 채팅방입니다.
이 채팅방에 참가한 A 씨는 올해 초 부산 동래구의 길거리에서 길고양이의 목을 졸라 죽이고, 이를 촬영해 유포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는데요. 채팅방을 운영한 B 씨도 함께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이 채팅방에는 100여 명의 참가자가 있었는데, 이들은 ‘면죄부’를 받았습니다. 경찰은 단순 참가자들에게 방조 혐의를 적용하긴 어렵다고 판단 내렸습니다.
위 채팅방은 '제2의 고어방'이었습니다. 그 전에 '제1의 고어방'이 있었단 거죠. 동물보호단체들은 "제1 고어방 처벌이 약했기 때문에 제2의 고어방이 생긴 것"이라 입을 모았습니다.
동물 학대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지만, 동물 학대 사건 수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동물보호법 위반 사건은 2016년 303건, 2020년 992건, 2021년 1072건이 발생했습니다. 6년 전에 비해 3배 늘어난 수치입니다.
동물 학대 사건은 처벌도 미미한 편입니다. 피해자가 말 못하는 동물이니 수사 단계에서 명확한 증거를 찾기도 어려울뿐더러, 이외에도 다뤄야 할 다른 사건이 워낙 많기 때문이죠. 이 탓에 수사 단계에서 ‘혐의 없음’으로 종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올해 8월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동물 학대 사건의 46.6%가 불기소, 32.5%가 약식명령 처분을 받았습니다. 재판으로 이어진 경우는 2.9%에 불과했고, 이 중 절반 이상이 벌금형을 받는 데 그쳤습니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서울시는 민생사법경찰단 안에 ‘동물 학대 전담 수사팀’을 꾸렸습니다. 수의사를 포함한 12명의 수사관이 이달부터 동물 학대 사건을 전담하는데요. 이들은 신고가 들어오면 현장에 출동해 상황을 확인하고, 수사를 거쳐 검찰에 기소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갖습니다.
반가운 소식은 부산시도 동물 학대를 수사하는 특별사법경찰관을 시범운영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서울시에 비하자면, 걸음마 단계에 불과합니다. 현재 시는 농축산유통과 수의주사 2명을 특별사법경찰관으로 지명한 상태인데요. 관련 교육을 받은 뒤, 내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한다고 하네요.
서울시에 비하자면 인력도 지원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전에 없던 역할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있어 보입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되니까요. 이 첫걸음의 끝에 의미 있는 결실이 있길 바라봅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