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창작하는 AI
만화가 이현세 씨가 지난 1일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이현세 AI(인공지능)’를 예고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자신이 죽고 나서도 ‘이현세 그림체’를 유지하면서 어쩌면 더 발전된 형태로 만화를 그리는 AI를 구상하고 있다는 게다. 아마도 2016년 네덜란드 렘브란트미술관이 만든 ‘넥스트 렘브란트’라는 AI에서 힌트를 얻은 듯하다. 이 AI는 렘브란트 화풍을 빼닮은 그림을 그렸고, 전시회도 열었으며, 많은 작품이 고가에 팔렸다.
2018년 미국 뉴욕의 한 경매에선 AI가 그린 초상화가 우리 돈으로 약 6억 원에 낙찰됐다. 해당 작품은 AI가 14~20세기 초상화 1만 5000장을 학습해 그린 것이라고 한다. 올해 8월 미국의 한 미술대회에서는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란 제목의 그림이 우승해 화제가 됐다. 출품자는 제이슨 앨런이라는 작가였는데, AI가 그의 명령어에 맞춰 대신 그려 준 그림이었다.
이처럼 미술을 비롯해 거의 모든 예술 분야에서 AI를 만나는 게 어렵지 않게 됐다. 이와 관련해 논쟁이 요란하다. 이 논쟁은 해묵은 동시에 새롭다. 예술의 본질이 무엇이고 창작은 과연 인간만이 가능한가에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다. AI가 쓴 시나리오의 영화에 아카데미 작품상을 줘도 되는가, AI의 노래가 빌보드차트 1위에 오르면 그 AI는 진정한 음악가인가, 피카소보다 더 피카소다운 화풍의 AI가 나온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아직은 예술에 대한 모독이라거나 표절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인 듯하다. 감정과 사상의 산물인 창작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전유물이라는 관념을 놓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11일 우리나라 특허청이 ‘AI는 발명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미국의 한 개발자가 열효율이 좋은 식품용기를 특허 출원했는데, 발명자가 자신이 아니라 AI라고 명기했다. AI가 순전히 혼자 힘으로 용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특허청은 “발명자는 자연인에 한정한다”며 특허 출원을 반려했다.
하지만 이런 고집을 꺾어야 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2021년 AI에 특허를 부여했는데, 이런 나라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그런가 하면 지난 12일 영국 의회 청문회에서는 에이다라는 이름의 AI가 출석해 자신은 인간은 아니지만 예술을 창작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창조자 신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이 이제는 거꾸로 창작하는 존재로서의 지위를 AI로부터 침식당하는 지경이다. 섬찟하다고 해야 할까.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