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진영화를 부추기는 지식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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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원 폴리컴 대표

SNS 발달, 정치 양극화 현상 심화
일부 지식인들 여기에 적극 가담
가짜 뉴스·엉뚱한 주장 여론 호도
대중에 확증 편향 증폭시키기도
사회적 영향력만큼 책임감 느껴야
자기 진영 잘못도 적극 비판 필요

지식인이란 전문가, 학자 등 기능적인 지식노동자가 아니라 사회적 정의와 공공선을 실천하고 현실 참여를 통해 대중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이들을 의미한다. 대중이 접근할 수 없는 정보, 판단하기 어려운 현실 문제,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해법과 방향을 제시해 보다 나은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이들이다. 권력에 가까이 있고 지식으로 이익도 추구하지만, 약자 편에서 불이익도 감수할 수 있는 용기와 신념을 가진 유기적 지식인을 말한다.

정보화 시대로 넘어오면서 누구나 지식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 시민사회가 생겨나고, 언론의 비판 기능도 커졌다. 제한된 정보 속에서 소수에만 부여된 과거의 지식인 역할이 더욱 광범위해졌고 지식인의 경계도 흐려졌다. 더구나 SNS의 발달로 과거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보가 소통하면서 여론이 시시각각 형성되고 있다. 지식인을 특정할 수 없을 만큼 누구나 지식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넘쳐 나는 정보 홍수 속에서 거짓 정보를 구별해 내고 바른 판단을 하기는 훨씬 어려워졌다. 과거엔 신뢰도 높은 지식인들이 알려 주는 정보와 주장에 의존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인터넷에서는 가짜 뉴스가 범람하며 정보 편향성과 불확실성이 커졌다. 일방적 정보에 의한 확증 편향과 주위에 같은 목소리만 들리는 반향실 효과로 인해 진영화는 더 깊어졌다. 권력에 항거하던 과거와 다른 지식인의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사람이 같은 집단에 속하면 극단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커진다. ‘집단 극화’ 현상이다. SNS가 발달하면서 정당에 관심 없던 이들도 정치인 팬덤이나 정파적 연대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점차 집단 극화 현상이 깊어졌다. 잘 쓰지 않던 ‘진영’이란 말은 일상 용어가 됐다. 진영을 부추기는 이들이 바로 지식인들이다. 이들은 진영 논리를 생산하고 자기 영향력 강화를 위해 진영화를 가속한다.

이로 인해 집단 극화와 진영 가속화로 정치는 과잉인데 오히려 정치 빈곤을 겪는 모순의 상황이 만들어졌다. 정치권의 내로남불 현상도 자기 진영의 잘못엔 눈감고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진영화 때문이다. 내로남불이 정치권의 성찰을 방해하며 정치가 실종되었다. 얼마 전 정치인 출신의 한 유명 작가는 스스로 ‘진보 어용 지식인’을 자처하고 나섰다. 그는 한 토론장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 진영에 속해 있다. 진영 논리가 뭐가 나쁘냐”며 진영 대변자임을 자임했다.

20여 년간 후보 낙선과 지지 운동을 해 온 전 대학 총장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도덕성 논쟁에 휘말리자 “현실의 권력은 현실일 뿐 현실의 권력에서 이상을 보지 말라”는 현실론을 설파하며 자신이 그간 주장해 온 정치인의 도덕적 기준을 스스로 뒤집었다. 진보 쪽만 그런 게 아니다. 오랫동안 강연과 저술로 혁신을 외쳐 온 한 보수 경제학자는 유튜브에서 끊임없이 가짜 뉴스와 선동에 가까운 주장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이들은 명망과 지식인의 권위로 대중에 확증 편향을 증폭시키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 지식인들은 진영 가담과 옹호를 넘어 진영을 이끄는 리더가 되었다. 진영화는 공론장을 파괴하고 내로남불을 키워 성찰을 방해한다. 이런 상태에선 현실 타개를 위한 생산적 논의와 미래 장기 전망을 기대할 수 없다. 진영 강화로 권력을 잡아 자기 신념을 실현하려는 시도는 분열만 가속한다. 지식인도 자기 이념과 정치적 입장을 가질 수 있다. 다만 사회적 영향력이 큰 지식인들은 사적 신념이나 주장을 자제하고 보다 더 큰 미래를 그려야 할 책임이 있다.

민주화 과정에서는 권력 항거가 지식인의 책무였지만,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선 시민의 합리적 판단을 이끌고 극단적 대립의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한다’는 플라톤의 경구는 시민의 정치 무관심을 지적한 말이 아니라 당대 지식인들의 정치 외면과 정치적 책임을 꾸짖는 말이었다.

뇌인지과학자 정재승 카이스트대 교수는 “내 집단의 이익을 옹호하지 않음으로써 더 큰 집단에 대한 신뢰를 지키려는 노력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배신이고, 자기 집단의 배신이 지식인의 책무”라고 말했다. 민주주의에서 지식인은 좋은 권력을 만드는 일보다 좋은 권력을 만드는 정치적 기반과 사회적 신뢰를 높이는 데 더 주력해야 한다.

배신자 소릴 듣더라도 자기 진영의 잘못에 눈감지 말아야 하고, 지식인으로서 말의 신뢰를 높이는 데 노력해야 한다. 진영의 이익 옹호를 위해 말을 뒤집는 이를 어떻게 지식인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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