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역선택을 대하는 국민의힘의 자세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공모 칼럼니스트
법원이 정진석 비상대책위원회에 대한 효력을 인정하면서 국민의힘의 내분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당 윤리위원회가 이준석 전 대표에게 ‘당원권 정지 1년’이라는 징계를 추가하며 그는 당분간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었지만, 지금의 소강상태를 갈등의 해소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장 내년 초 치러질 걸로 예상되는 전당대회를 앞두고도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적어도 새로운 당 대표가 선출되기 전까지는 이 지난한 집안싸움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여당의 집안싸움을 바라보는 당심과 민심은 크게 엇갈린다. 그리고 같은 국민의힘 지지층이라 하더라도 전통적 지지층인 6070세대와 이준석 체제 이후 합류한 2030세대의 의견이 극명하게 나뉜다. 사실 선거 때 뽑은 사람만 같을 뿐, 이 둘은 전혀 다른 집단이다. 서로 추구하는 가치도, 목적도 다르다. 이들은 그저 ‘정권교체를 위해서’ 일시적으로 연대했을 뿐이다.
당 대표 선출 앞두고 집안싸움 격화
여론조사 방식 놓고 세대별 인식 차
명분도 원칙도 없는 집권 여당 한심
청년들, 진보도 싫고 보수도 싫다
눈앞의 먹고사는 문제나 해결해라
정쟁만 일삼으니 청년들 등돌린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국민의힘에선 지난해부터 6070 당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후보와 2030 당원 및 일반 여론을 등에 업은 후보 사이의 대결이 거듭되고 있다. 대선 경선 당시 윤석열 후보와 홍준표 후보가 그랬고,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맞붙었던 김은혜 후보와 유승민 후보도 그랬다. 대결은 매우 팽팽했지만 결국 압도적 당심을 등에 업은 후보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재미있는 건 내년 초로 예상되는 당 대표 선거 또한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윤심(尹心)을 호소하는 인물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고 그 대척점에 있는 유승민 전 의원도 슬슬 몸을 푸는 모양새다. 평소 같았으면 이 구도가 그리 선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2015년 ‘국회법 파동’ 이후 유 전 의원에게 씌워진 배신자 프레임이 수시로 그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그에 대한 지지가 여느 때보다 거세다. 관련 여론조사마다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고 심지어 보수적 색채가 짙은 대구·경북(TK)에서 1위를 차지한 것도 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의 독주가 가시화되자 여권에서는 또다시 역선택론이 부상하고 있다. 중도·진보층으로부터 호감도가 높은 유승민이 보수정당의 대표로 거론되는 것부터가 왜곡된 결과이고, 야권 지지자들이 당내 선거에 개입함으로써 국민의힘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급기야는 “역선택 방지 조항을 넣어야 한다”며 전당대회 룰을 바꿔 당 대표를 뽑을 때 100% 당원 투표로 선출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참고로 국민의힘은 지난해 전당대회에선 당원 투표를 70%, 일반 여론조사를 30% 반영했다.
그러나 현재 여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역선택은 그 의미가 상당히 왜곡돼 있다. 역선택이란 무엇인가. 자기에게 유리하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상대에게 불리한 걸 고르는 행위를 우리는 역선택이라고 하지 않나. “민주당에서 가장 취약한 후보, 가장 만만한 후보를 우리 당의 대표로 만들려 한다”는 김기현 의원의 주장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를 비롯한 ‘윤심 호소인’들은 정작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 진짜 역선택은 중도 확장성을 지닌 유승민이 아니라 공천권 사수하겠다고 국민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통령실 눈치만 보는 자신들이라는 걸, 당사자들만 모른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스스로 강행하는 역선택에 소리 없이 웃고 있을 뿐이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당 전체가 명분이고 원칙이고 없이 일단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규칙을 바꾸고 보자는 식이라는 점이다. 대의는 사라지고 정치공학적 움직임만 남은 국민의힘의 현재 모습을 바라보면 씁쓸하다. 여당이 민생에 투입해야 할 역량을 그런 일들에 쏟아붓고 있는 건 국민으로서도 큰 비극이다.
지난 몇 년간 청년들이 정치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공통된 정서가 있다면 ‘진보도 싫고, 보수도 싫다’라는 것이다. 원칙과 신념은 저버린 채 진영 논리에 빠져 정쟁을 거듭하는 정치에 실망한 이들이 거대한 무당층을 형성했다. 청년들이 우리 정치권에 바라는 건 기상천외한 정치공학적 수를 써서 특정인을 몰아내는 게 아니다. 당이 똘똘 뭉쳐 상대 당과 ‘제대로’ 맞서 싸우는 것도 아니다. 그저 경제·안보 위기가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이 시대에 눈앞에 닥친 먹고사는 문제나 제대로 해결해 주길 바랄 뿐이다.
안타깝게도 새 정부가 출범한 이래 정부 여당에서 그런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있는 이 상황에서 반성하고 제대로 쇄신해 다시 국민의 사랑을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누구 하나 몰아낼 궁리로 불을 때고 있는 지금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적어도 떠난 청년들의 마음이 되돌아올 일은 없을 것 같다. 남은 4년 반도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