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81. 숨은 명소?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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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웃통을 벗은 채 해수욕장에 있다면 괜찮지만 길거리에 서 있으면 위화감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 또한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있으면 어색하기 짝이 없다.

‘이 바둑은 좌상귀 흑이 떨어지면서 실질적으로 끝난 셈이다. 그러나 그 후로 보여 준 박정환의 마무리가 굉장히 교과서적이어서 볼 만했다.’

바둑기사 가운데 한 구절인데, 여기에 나온 ‘굉장히’가 바로 그런 어색한 말.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보자.

*굉장하다: ①아주 크고 훌륭하다.(잔치가 굉장하다./새로 지은 집이 굉장하다.) ②보통 이상으로 대단하다.(굉장한 능력./고함 소리가 굉장하다./비바람이 굉장하다./…)

이러니 ‘굉장히’도 ‘아주 크고 훌륭하게’나 ‘보통 이상으로 대단하게’라는 뜻으로만 써야 하는 것. ‘굉장히 작다’나 ‘굉장히 느리다’가 어색한 건 그 때문이다. ‘크기가 굉장하다/속도가 굉장하다’는 ‘크기가 크다/속도가 빠르다’는 뜻이지 ‘크기가 작다/속도가 느리다’는 뜻이 아닌 것. 그러니 글머리 첫 문장에서 ‘굉장히’는 ‘아주, 매우’쯤이 적당했다.

〈소녀시대 수영 ‘어마어마하게 마른 몸매’〉

이 제목에 나온 ‘어마어마하게’ 역시 마찬가지. 표준사전을 보자.

*어마어마하다: 매우 놀랍게 엄청나고 굉장하다.(어마어마하게 큰 집./어마어마하게 많은 책./그의 선거 유세에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러니 ‘어마어마하게 마른 몸매’는 ‘아주 마른 몸매’나 ‘놀랄 만큼 마른 몸매’쯤이면 괜찮았겠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되었으니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며 책임감 있고 어른스러운 가장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겠다.”

결혼하는 어느 연예인이 남긴 소감인데, ‘어른스러운’이 어색하다. 표준사전을 보자.

*어른스럽다: 나이는 어리지만 어른 같은 데가 있다.(어른스럽게 말하다./그 아이는 행동이 어른스럽다./뛰어 들어온 듯 막내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심각하고 어른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박완서, 흑과부〉)

그러니, 어른이 아닌 아이에게 쓸 말이지, 결혼한 어른에게 쓸 말은 아니었던 것.

〈배가 산으로 가는 거 아니냐고요? 필리핀 세부의 숨은 명소 하이랜드 여행지 3곳〉

이 제목에 나온 ‘숨은 명소’도 어색한 표현이다. 표준사전을 보자.

*명소: 경치나 고적, 산물 따위로 널리 알려진 곳.

이러니, 모순어법이 아니라면, ‘숨은’과 ‘명소’는 어울리지 않는 결합인 것.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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