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레고 쇼크
빌룬의 인구는 6700여 명에 불과하지만 덴마크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 있다. 전 세계로 수출하는 블록 장난감 레고의 본사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레고는 아이들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한다. 무독성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포장에 사용된 종이나 잉크마저 먹어도 무방할 정도다. 지금은 플라스틱을 대체할 신소재를 찾고 있다고 한다. 레고는 2014년 타임지로부터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장난감’으로 선정되었다. 2016년에는 포브스가 선정한 가장 가치 있는 기업 86위, 가장 평판이 좋은 기업 6위를 차지했다.
천하의 레고지만 한국 시장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980년대 국내에 상륙한 레고는 처음엔 파죽지세였다. 국내 장난감 블록 업체들을 차례로 격파한 뒤 경기도 이천시에 연간 750만 개의 박스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준공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레고는 부산의 완구 제조업체 옥스포드와의 경쟁에서 고전했다. 레고는 옥스포드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지만 4년에 걸친 소송전에서 패하고 만다. 2000년대 들어 레고의 이천 공장은 매각되고, 생산라인은 중국으로 옮겨 갔다.
레고랜드는 덴마크 빌룬의 레고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테마파크로 출발했다. 그 뒤 영국, 미국, 독일, 말레이시아, 아랍에미리트, 일본 등에 진출했고 중국에도 여러 곳에서 공사 중이다. 레고랜드는 1996년부터 한국 진출을 타진했다. 그 결과가 우여곡절 끝에 지난 5월 춘천에 개장한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다. 당초 경기도 이천으로 계획했지만 수도권정비계획법으로 백지화되고 만다. 장소를 강원도 춘천으로 바꾸고 2015년에 개장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춘천시 중도 부지에서 신석기 시대부터 삼국 시대까지 유물이 대거 발견되면서 7년이나 늦춰졌다.
레고는 이번에 한국에서 레고랜드가 부도 처리되는 굴욕을 더하게 됐다. 강원도가 아이원제일차(레고랜드 사업 주체인 강원도중도개발공사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설립)가 발행한 2050억 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의 빚보증 의무를 거부해서다. 이 사태는 지방자치단체에게는 국가신용등급에 준하는 높은 신용도를 부여했던 시장의 신뢰를 단번에 흔들어 놓았다. 시장에 불안감이 커져 기업들이 줄줄이 회사채 발행에 실패하면서 자금 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자신이 어떤 일을 벌였는지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정치라고 하는 리스크가 점점 커지는 모습이 불안하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