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만기 코앞인데 기업들 상환·재발행 모두 ‘경색’… “내년 더 심각”

황상욱 기자 eye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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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상반기 만기 회사채 68조 원
금리 급등·수요 부진 차환 어려워
최고 신용 한전 회사채 발행 유찰
전문가 “자금 부족 내년 상황 악화”

추경호(오른쪽 세 번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기재부 제공 추경호(오른쪽 세 번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기재부 제공

최근 채권시장 경색으로 기업들의 자금줄이 꽉 막히는 이른바 ‘돈맥경화’ 위기가 대두된 가운데 내년 상반기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규모가 68조 원 이상인 것으로 집계됐다. 현재의 시장 경색이 길어질 경우 기업들이 확보해 둔 자금이 본격적으로 고갈되는 내년부터 진짜 위기가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당국이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투입 등 시장 안정을 위한 조치를 준비하고 있지만 실행이 지연되고 있어 시장 분위기는 좋지 않다.


23일 금융정보업체 연합인포맥스 등 금융업계에 따르면 이달 24일부터 오는 12월 말까지 연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ABS 포함·CP 제외) 규모는 약 13조 9200억 원이다. 이어 내년 상반기(1~6월)에 추가로 54조 3400억 원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한다. 다음 주부터 내년 상반기까지의 회사채 만기 규모는 총 68조 2500억 원으로 집계됐다.

만기가 돌아오면 자금을 상환하거나 새로 회사채를 발행해 만기 회사채를 갚는 ‘차환’이 이뤄져야 하는데 최근 시장은 발행금리 급등과 수요 부진 등으로 회사채 차환 발행이 어려워지는 등 경색이 심화하고 있다. 심지어 최고 신용등급인 AAA급 기업마저 시장에서 외면당하는 실정이다.

한국전력공사(AAA)는 이달 17일 5%대 이례적인 고금리를 제시하며 4000억 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시도했으나 1200억 원어치가 유찰됐고, 같은 날 한국도로공사(AAA)도 1000억 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 나섰으나 아예 전액 유찰됐다. 비교적 우량한 신용등급인 AA+급 JB금융지주는 최근 2년물, 3년물로 각각 800억 원, 200억 원 모집에 나섰지만 230억 원, 150억 원씩만 모이는 데 그쳤다. BBB+ 등급 한진은 2년물로 300억 원 모집에 나섰으나 겨우 10억 원만 확보했다.

현재의 회사채 시장 경색은 기본적으로 기준금리 인상 추세 속에 나타난 불가피한 현상이다. 통상 회사채는 국채보다 신용도가 낮아 국채보다 더 많은 이자를 줘야 발행이 가능하므로 국채 금리 상승기에는 회사채 금리도 따라 오른다. 하지만 여기에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동화증권 위기가 대두됐고, 이 와중에 갑작스러운 강원도 ‘레고랜드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로 지방자치단체의 신용보강에 대한 신뢰가 흔들려 투자심리가 더욱 위축됐다.

회사채를 적극적으로 사들여야 할 증권사·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올해 금리 인상기에 채권 평가손실을 우려, 일찌감치 ‘북 클로징’(book closing·회계연도 장부 결산)을 한 것도 시장 경색에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하면 기업들이 올해 확보해 둔 ‘자금 실탄’이 바닥나는 내년부터 위기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은기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통화에서 “올해 많은 기업이 금리 인상을 예상하며 1~2월에 회사채를 만기 규모보다 넉넉하게 선발행해 놨기 때문에 확보해 둔 자금으로 연말까지는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문제는 내년 상반기로, 가뜩이나 내년 상반기 만기 도래 물량은 올해 동기보다 많아지는데 그때까지 회사채 시장 경색이 풀리지 않으면 차환이 버거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위원회가 이달 20일 1조 6000억 원의 채안펀드를 투입해 급한 불을 끄기로 했다는 소식에 업계는 안도하면서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정부 발표에도 시장금리가 하락하지 않는 것을 보면 채안펀드 자금이 바로 시장에 풀릴지에 대해 시장이 회의적인 것 같다”면서 “정부는 물가와 금융 안정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어 하지만 둘은 상충하는 목표여서 근본적 해법이 나오기 어려워 보인다”고 전했다.


황상욱 기자 eye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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