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그림 도시’ 부산, 해외 회화 교류 중심지였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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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박물관 ‘조선시대 부산의 화가들’

18~19세기 명화 130점 한자리
변박 ‘왜관도’ 실물 볼 수 있어
이시눌 ‘서원아집도’ 국내 첫 소개
중인 집단 ‘무임’ 부산 화단 주도
김홍도 등 당대 유명 화가 부산행
대일 수출 대표작 ‘유마도’ 첫선

독일 쾰른 동아시아박물관 소장품으로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이시눌의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부분). 부산박물관 제공 독일 쾰른 동아시아박물관 소장품으로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이시눌의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부분). 부산박물관 제공

부산박물관에서 현재 변박의 저 유명한 〈왜관도〉 실물이 전시 중이다. 왜관 연구의 일급 사료로 잘 알려져 있으나 무엇보다 실물 그림이 빛을 발한다. 1783년 부산 초량왜관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고 정선 풍으로 그린 푸른빛 소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다. 1783년 부산에서 이런 명품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18~19세기 부산이 명실상부한 당대 최고의 ‘그림 도시’였기 때문이다. 부산박물관이 지난 15일부터 12월 4일까지 개최 중인 국제교류전 ‘조선시대 부산의 화가들’은 부산의 재발견에 값한다. 부산은 ‘조선시대 그림 도시’였다는 것이다. 130점을 한 데 모았는데 이중 69점이 국외 작품이다. 국내 최초 전시 공개하는 작품이 5점이다.


18~19세기 부산에서는 20명 이상의 수준 높은 화가들이 활동했다. 이렇게 화가들을 찾아낸 것은 대단하며 2000년대 이후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면서 최근 ‘ 그림 도시 부산’ 면모에 접근하게 된 것이다. 변박 변지순 이시눌 변지한 등 이름이 알려진 화가도 있고, 옥천 삼락재 청풍주인 송수원 해옹 군실 만취 등 자호만 밝혀진 화가도 있고, 이름 미상의 화가도 있다는 것이다.

변박은 부산 화단의 싹을 틔운 화가였고, 변지순과 변지한은 부산 화단의 꽃을 피운 이들이다. 이들은 대표적 역관 집안이었던 밀양 변씨 출신이다. 이시눌은 ‘부산의 김홍도’라 할 만하다고 한다. 독일 쾰른 동아시아박물관 소장으로 국내 최초 공개하는 이시눌의 ‘서원아집도’는 대형 화폭에 당대 문인들의 주 테마를 수준 높게 표현한 문인화라고 한다. 이 그림에 시를 적은 ‘초사(初士)’는 지방 엘리트 이름이 분명하며, 이는 그림을 생산·향유하는 ‘화가와 엘리트의 관계망’이 형성돼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이번 전시에 출품된 이시눌의 ‘농가월령도12폭병풍’은 동래부 향리 박주연의 주문을 받아 제작한 그림으로 그 집안에서 200년간, 아주 오래 보관해오던 작품이라는 점에서 특이한 사례라고 한다. 이 집안에 보관된 많은 그림들은 이번 전시에 나왔는데 당대 부산에서 지역 화가와 지역 엘리트의 그림 향유망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림 도시 부산’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대단히 중요한 대목은 ‘그림 도시 부산’을 주도한 것이 중인 집단, 특히 무임(武任)이었다는 점이다. 유현 학예연구관은 “동래는 특히 중인 주도의 사회였는데 그것이 사대부보다 떨어지는 계급의 사회라는 것은 아니고, 외려 새로운 시대 흐름을 주도하는 사회였다는 것을 이들 그림에서 알 수 있다”고 했다. 변박 변지순 변지한 이시눌 등 당대 부산의 화가들은 모두 무임 최고위층인 ‘중군’ ‘천총’ 등이었다고 한다. 이런 중인들이 지방 화단을 구축하거나, 나아가 역관으로 나서 일본과의 교류 실무를 도맡고, 동래상인으로 변신해 통상을 주도하기도 한 것이 조선 후기 동래 모습이었다. 요컨대 시대 변화 속에서 부산에선 새 엘리트들이 부상하고 있었으며 그중 일부는 18~19세기 그림 도시 부산을 만든 핵심이었다는 것이다.

이들 화가는 동래부의 그림 주문도 소화했다. 2점의 ‘동래부접왜사도’가 이번 전시에 나왔는데 붓 터치가 절묘한 그것을 두고 이전에는 겸재 정선이 그렸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당대 그림 도시 부산에서 이런 그림을 능히 그렸다고 봐야 한다”는 게 이성훈 학예연구사의 설명이다. 그만큼 부산 화단의 실력은, 화가들이 집단적으로 출현한 당대 평양을 넘어선 최고의 지방 화단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작가 미상으로 부산에서 그린 ‘동래고지도’를 보면 지도인데도 변박 화풍을 이어받아 그림 같은 절묘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는 설명이다. 역시 작가 미상의 1725년 ‘동래부도’는 동래읍성이 구축되기 전 동래부 모습을 묘사한 귀한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산을 파란색으로 처리했는데 이는 일본 그림 영향이라고 한다. 부산은 당대 문화가 국경 없이 넘실거리던 국제도시였다는 것이다.

요컨대 당대 부산은 대일 그림 수출의 중심지이자 한일 회화 교류의 중심지였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 나온 김홍도 ‘죽하맹호도’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빼어난 그림이다. 섬세한 호랑이 털의 필치에서 맹수의 기운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과연 조선 최고 화가의 명품답다. 이 그림에는 ‘조선’이라는 국명이 적혀 있는데 부산을 경유한 대일 수출용으로 제작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중앙 화단의 그림이 부산을 통해 일본에 가거나, 중앙 화단의 화가들이 통신사행에 참여하면서 부산에 상당 기간 머물거나, 또 당대 최고 화가들이 부산을 찾거나 했는데 그것은 빼어난 풍광을 갖춘 부산이 국제적 그림 도시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국내 최초로 전시 중인 1748년 ‘묵매도’를 그린 최북은 통신사행에 참여하면서 부산에 온 경우이고, 전시에는 나오지 않은 태종대 해운대 몰운대 그림을 그린 정선 김홍도 김윤겸 김응환은 부산을 찾은 당대 대표 화가다. 당대 최고 그림들이 부산을 통해 국제 유통한 것은 당시 부산의 중인 화가들의 교유망을 통해 가능한 것이었다고 한다.

부산 화가들이 그림을 그려 일본에 수출한 경우는 더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이번에 250여 년 만에 국내 처음 선보이는 변박의 1779년 ‘유마도’다. 바람에 휘날리는 버드나무 표현이 일품인 그림은 부산 그림의 국제적 유통 과정을 보여준다. 이름을 알 수 없지만 통신사 수행화원으로 추정되는 ‘해옹’의 ‘해암응도’는 바다를 배경으로 기암절벽에 앉은 매를 그렸는데 부산 풍정이 물씬한 ‘부산표 그림’이다. 일본 교토 사찰 지쇼인 소장 1811년 ‘조선서화병풍’은 많은 작품을 병풍으로 만든 것인데 변지한 이시눌 노포 등 당대 부산 화가들의 그림과 서예가 꽉 들어차 있다.

발길을 붙잡는 작품도 있다. 박덕원, 본명 박윤한의 서예 작품도 있는데 그는 세도정권의 풍파가 몰아치던 1805년 통신사 ‘서계(書契)위조사건’에 연루돼 억울하게 효수형에 처해진 동래 역관이었다. 그의 글씨를 일본에서 값어치 있는 작품으로 유통한 것이었다. ‘큐레이터와의 역사 나들이’ 행사가 11월 25일 오후 4시에 열린다. 정은우 부산박물관장은 “국외 작품을 들여오는 데 1년이 걸린 것도 있다”며 “그림 도시 부산을 조명하는, 공력을 들인 뜻깊은 전시에 시민들의 많은 관심이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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