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헌정사 첫 시정연설 보이콧… 예산안 정국도 ‘시계제로’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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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무지·무능·무대책 연설”
대통령실 “공당의 책무 다하길”

25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이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치고 국회를 떠난 뒤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이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치고 국회를 떠난 뒤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야권을 향한 검찰·감사원의 전방위적 수사와 감사, 여기에 맞서 더불어민주당이 25일 헌정사 유례 없는 대통령 시정연설 전면 보이콧으로 대응하면서 협치가 실종된 대치 정국이 해소될 기미가 안 보인다. 곧 시작되는 내년도 예산안 심사 역시 험로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민주당은 이날 당초 공언한 대로 윤석열 대통령의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 전면 불참했다. 야당 의원들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시정연설에 입장조차 하지 않은 채 전면 보이콧하는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민주당은 검찰의 당사 압수수색 시도 이후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 중 ‘비속어 논란’, 종북 주사파 발언, 검찰과 감사원의 전방위적 수사·감사에 대해 사과하지 않으면 협치의 의지가 없다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며 시정연설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밝혀 왔다. 또 이재명 대표가 제안한 ‘대장동 특검’ 수용도 시정연설 참여에 연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은 이날 “경제와 안보의 엄중한 상황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며 국회 협력을 강조한 윤 대통령의 시정 연설에 대해서도 “참 무성의하다”고 가시 돋친 혹평을 쏟아냈다.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후 기자간담회에서 “민생과 미래는 없고 권력기관 강화만 있다”며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무지·무능·무대책 이미지인데 시정연설도 그와 같은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또 “(예산안은)긴축재정과 약자 복지가 핵심인 것 같은데 긴축재정은 영국 총리 사퇴만 봐도 옳지 않다는 게 증명됐다”며 “긴축재정과 초부자 감세를 철회할 것을 요청했음에도 전혀 기조 변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예산 심사 방향에 대해서는 “민생경제 예산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면서 정부·여당이 반대하는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의 이른바 ‘노란봉투법’에 대해서도 “기존에 발의된 내용을 수정해 우리 당 안을 발의해 최대한 조속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여권도 강경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시정연설 보이콧을 ‘이재명 지키기’로 규정하면서 예산안 기조를 고수하겠다는 태세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시정연설 직후 기자들과 만나 “지금 사법의 정치화가 이뤄지고 있다. 아주 좋지 않다”며 “절대 다수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의 입법권을 당대표의 범죄 은폐 수단으로 활용하는 거 아니냐”고 비판했다. 주호영 원내대표 역시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는 이 대표 개인의 문제이지, 민주당의 문제가 아니다”며 “분리해서 국정, 예산 심사에는 민주당이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실 고위 관계자도 이날 민주당의 시정연설 보이콧에 대해 “민주당이 한 특정인의 사당은 아니지 않는가. 공당으로서 책무를 다하기를 바란다”며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이 대표를 겨냥한 검찰 수사 등에 반발해 시정연설 청취를 거부한 것을 공당의 책무와 연관 지으며 이례적으로 강한 톤으로 비판한 것이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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